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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Feb 23. 2021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


Pasta alla Norma

가지, 토마토, 샬롯, 바질과 리코타 치즈, 카사레치아 면으로 시칠리아 전통 파스타인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를 만들어 보았다. 나름 충분한 레퍼런스를 참고해 만든 정통 방식이다. 나는 전통과 정통의 가치를 중시하며 최대한 그것에 충실한 요리를 소비하거나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탈리아 요리를 이야기할 때 '전' 또는 '정통'이라는 표현의 역사적 경계선은 대략 19세기 언저리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소개할 노르마 역시 마찬가지. 전통이라고 무슨 천 년 전부터 먹던 방식은 아니라는 이야기. 애초에 근세까지 대다수 사람들은 문맹이었고, 구전되던 민간 요리법들도 대부분 크게 변형되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노르마라는 이름으로부터 11세기경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노르만 통치자들의 웅대한 기상이 떠오르는 듯하나 실상은 야채 위주의 소박한 가정 요리. 그 이름은 카타니아 출신 작곡가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유래하였다고. 당시 동네 가정집에서 보편적으로 해 먹던 흔한 요리인데, 어떤 작가가 그 맛에 대한 경탄의 표현으로 '노르마'를 외쳤다나 뭐라나. 하긴 노르만족은 가지는 커녕 토마토도 즐겨먹지 않았으니 관계가 없겠고, 시칠리아 왕국 당시에는 농산물 생산량 감소로 밀가루조차 부족하였으니 서민들이 가지와 토마토가 들어간 파스타를 즐겨 먹었을 가능성은 낮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면 요리를 먹지만, 듀럼밀로 만든 파스타라는 음식은 시칠리아에서 유래하였다. 시칠리아는 고대부터 유럽 최고의 듀럼밀 산지로, 파스타라는 단어가 문헌에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듀럼밀을 빻아 ᆫ든 가루(세몰리나)를 반죽해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제분 기술의 발달로 그라나뇨 등이 파스타의 대표적 생산지가 되었고 수입 의존도도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최고 품질의 듀럼밀은 여전히 시칠리아에서 많이 재배된다. 한편 가지와 ᅩ마토는 18세기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채소였다. 가지의 이태리어 멜란자네Melanzane의 어원은 Mela insana인데, 이는 '미친 사과'라는 의미로 먹으면 병이 들거나 죽는다고 생각되어 인기가 없었다. 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에스파냐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여온 토마토 역시 낯선 식재료로 오랜 세월 배척당했으며 18세기에 들어서야 이런 외국 채소들이 널리 재배, 소비되고 다양한 조리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리하면, 동명의 오페라 초연이 1813년이니 알라 노르마 역시 그 즈음 정립된 레시피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현지에서는 구운 가지, 토마토, 바질과 리코타 살라타가 들어가면 대충 다 노르마로 퉁치는 듯. 뚱뚱한 멜란자네라든지, 리코타 치즈를 가염해 숙성한 경성치즈인 리코타 살라타 같은 재료는 한국에서 구하기 힘드니, 우리는 대충 시판되는 재료로 타협해도 될 듯하다. 면도 전통적인 마카로니에서부터 리가토니, 메지 리가토니 등 뭘로 만들어도 크게 상관 없는 모양이니까. 뭘 어쩌든 무조건 맛있는 조합이고,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어차피 '가지'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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