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ma di Pistacchi / 메이킹 영상은 인스타그램 @pachinnom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파스타 면, 세몰리나, 올리브 오일 같은 기본 식자재나 트러플 등의 고급 식재료들은 여러 문익점들의 공헌으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품질 좋은 상등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원물의 퀄리티 차이에 대한 대중의 민감도도 많이 예리해졌고, 좋은 제품을 사용한 잘 만든 요리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환기되었다.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그러나 치즈나 프로슈토, 피스타치오 등의 부수 재료들의 경우 아직은 저품질 대량생산 공산품 위주의 시장이다. 말 그대로 이것들을 '부수' 재료라 여기기 때문일텐데, 이번에 소개할 Crema di Pistacchi나 Fettuccine Alfredo 같은 파스타는 바로 그것들이 메인이 되는 파스타인지라 한국에서 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시칠리아 또는 터키산 피스타치오를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크레마 디 피스타키는 삶아서 식힌 피스타치오를 갈아 만든 소스와, 구워서 지방을 녹여낸 햄 등의 재료로 심플하게 만들어지는 시칠리안 스타일의 파스타다. 피스타치오의 고유한 풍미, 고소한 맛과 눅진한 질감에 염장햄의 함미가 잘 어우러져 질리지 않는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표면적이 넓어 소스가 잘 묻는 칼라마라타를 사용해 심플하게 만들어 보았는데, 피스타치오를 소금물에 한번 데쳐 속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쓴맛과 기분 나쁜 식감을 주기 때문이다.
맛과 향의 밸런스상 스펙(훈연한 프로슈토의 일종)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기름진 관찰레나 판체타도 좋고, 여의치 않으면 그냥 나처럼 마트에 파는 공산품 산다니엘레나 파르마, 심지어 베이컨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어차피 여건상 100% 정통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들어서 제대로 숙성하고 제대로 손질해서 낸 프로슈토를 한 번 맛보면 시중에 파는 제품들은 거의 쓰레기로 여겨지게 되는데, 이것도 충분히 맛있긴 했지만 현지의 고품질 피스타치오로 만든 이 파스타의 맛은 이것과 얼마나 다를지 새삼 궁금해졌고, 이내 슬퍼졌다.
제대로 된 현지의 맛을 복붙하듯 한국에서 구현해낸다는게 얼마나 힘든,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예전보다는 시장도 커지고 대중의 눈높이도 올라갔지만, 여전히 파친놈들에게는 척박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