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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Nov 22. 2020

서평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일본 철학계의 신성이라 불리는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주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통해 정보 획득과 지식의 무용성, 그리고 반복하여 읽고 또 읽는 행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노예적 딜레탕트 비평가를 양산할 뿐인 현대의 대학 교육 체계와 학자들의 장 그 자체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예시로 들어 결국 책을 공들여 읽는 것만으로 혁명이 가능하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쳐 나간다. 뭐든지 읽고 쓰는 사람은 분야에 관계없이 모두 문학자이며, 문학이 죽어가는 까닭은 그것이 혁명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저자의 대담한 사유가 신선하다. 일부러 엄밀한 철학서가 아닌 가벼운 에세이집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논증보다는 많은 부분 직관에 의존하고 비약이 많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책이다. 일단 저자의 평론가/전문가 혐오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지식의 명령에 착취당하는 사람들이고, 주워섬긴 지식의 양으로 권위를 얻어 그 명령을 다시 내리갈굼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로이 바스카가 말한 설명적 비판 이론에 따르면,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에 몰두해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이론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변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자의 전문가 혐오는 좀 과한 감이 없지 않다. 또한 저자는 딜레탕트를 완전히 쓸모없는 한심한 쓰레기들로 묘사한다. 정말 그것뿐일까? 문학이란 구체를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보편을 다룰 만큼 훈련된 언어가 아니라면 창조된 구체는 구체성을 결여하므로, 보통수준의 학문보다 문학을 한 차원 위에 올려놓는 것은 그리 부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직관이나 영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비평은 보통의 문학보다는 또 한 차원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평론을 폄하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폄하인 것이다. 들뢰즈의 해석을 읽고 경탄한 한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때론 담론이 예술 이상이다. 예술적 담론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며, 읽고 또 읽는 것 못지않게 뭐든 말하고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단언컨대 무지보다는 딜레탕트가 낫다. 본서는 감성적 혁명, 미학의 정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재정의한 문학성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또한 본서에는 계급적 사유가 누락되어 있다. 애초에 책을 공들여 읽고 또 읽어 혁명적 사유를 잉태하고 해방된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 자체가 일종의 계급이다. 독서도 글쓰기도 결국 상부구조인 바, 사회와 시민과 구조와 체계와 자본과 권력과 정치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혁명적이지 않다. 저자는 자신이 고교를 중퇴한 시골 출신이라 강조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언어적 계급성을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잘 읽히도록 쉽게 썼다고 해서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본인이 허수아비 때리기로 공격한 아감벤의 세속화 개념을 다시 공들여 읽고 또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남의 이론을 공들여 읽지 않고 몇 개의 이론적 개념들만을 감각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론은 휘청댄다." - 문학평론가 김현, <행복한 책읽기> 중. 좋은 책이지만 여러모로 감각적이고,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휘청대는 부분이 많다. 한편 그 대담하고 도발적인 신선함만으로도 분명히 혁명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관점과 준거가 생겨나는 것이 혁명이라면, 그것은 텍스트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그 텍스트를 파괴하고 전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저자가 문학의 범위를 넓게 보았듯이, 책을 넘어 이 세계와 현실 자체가 모두 텍스트인 바, 정보와 지식을 차단하고 오로지 책을 읽으며, 거부와 냉소와 선언으로 저자는 과연 세계의 무엇을 혁명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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