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맞아 찾아간 작은 마을
처음으로 마케니를 벗어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대중교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시에라리온에는 두 가지의 교통수단이 존재한다. 오타바이와 자동차. 오토바이는 택시처럼 도시 내의 단거리를 갈 때 이용할 수 있고, 자가용을 제외한 자동차는 목적지에 따라서 또 운전자와 손님의 관계와 손님의 짐의 양에 따라서 요금이 책정된다. 때때로 봉고차 같은 미니밴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4-5인용 자가용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콩나물시루처럼 8-9명이 타고, 차 지붕엔 어김없이 짐 보따리들이 단단히 묶여 여행을 함께 한다. 안토니오의 유치원 등 하원을 위해서 대학이 기사와 차편을 제공해 주었지만,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쉽게 자동차를 사용할 수는 없어서, 마케니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부활절을 앞두고 시에라리온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카발라(Kabala)에서 더 동쪽으로 기니(Guinea)와 맞닿은 몽고벤두구( Mongo Bendugu)에 살고 계신 칼로 신부님이 마케니에 오셨다가, 우리를 몽고 벤두구로 초대하셨다.
사실 칼로 신부님은 우리가 시에라리온에 올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분 이기도 하다. 마르코가 대만의 자베리안수도회( Xaverian missionaries)의 친구 신부님의 집에 놀러갔는데, 마침 그때 시에라리온의 칼로 신부님과 대만의 신부님이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게 되면서 마케니 대학을 알게 된겄이었다. 어쨌든 온라인으로 만났던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니, 서로 반가움이 배가 된 듯했다. 칼로 신부님도 도요타 지프를 몰고 오셨는데,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이고 대중교통이 전무해 사람뿐 아니라 물건을 나르는 일이 중요한 현지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차종이었다.
아침 여섯 시쯤 마케니를 출발해서, 2시간 여를 달려 카발라에 도착했다. 대도시인 마케니와 카발라 사이에는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포장된 도로가 있어서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카발라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몽고벤두구를 향해서 다시 출발했는데, 과연 차가 다닐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산 길이었다. 덜컹덜컹, 좌우로 아래위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손잡이를 꼭 부여잡고, 경사가 50도는 될 것 같은 가파른 오르막을 재주를 부리듯 오르는 신부님의 운전실력에 경탄이 나왔다. 마르코는 "이건 마치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향하는 계단을
자동차로 오르는 기분이네요!"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나는 목적지가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쯤 달려서 세상의 끝에 있을 것 같은 몽고 벤두구에 도착했다.
사제관에 도착하자 자그마한 키의 파트릭 신부님이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셨다. 필리핀 사람인 파트릭 신부님은 나를 보자 반가워하며 누나 같다고 했고, 파트릭 신부님의 나이가 내 동생의 나이와 같아서 나도 동생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파트릭은 신부의 역할 이외에도 마을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널찍한 사제관 마당에는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 닭 일곱 마리 그리고 원숭이가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원숭이를 처음 가까이서 본 안토니오는 신기해하며 따라다녔다.
몽고 벤두구는 그야말로 세상 끝에 있을 것 고요하고 평화로운 같은 작은 마을이었다. 수탉 소리가 아침을 열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풀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간 조차 멈출 것 같은 공간. 투에라는 동네 아줌마가 식사를 준비해 주셨고, 아줌마의 아들인 토마스는 엄마를 따라와 안토니오와 함께 놀았다. 이 두 꼬마는 마당의 타마린(Tamarind) 나무에 옆에 붙어서, 콩깍지 같이 생긴 열매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콤달콤한 타마린 열매를 입에서 넣고 살을 발라 먹고는 "툭"하고 씨앗을 뱉어 내었다.
부활전 성주간을 사제관에 초대되어 지내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천주교의 모든 전례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했던 성목요일에는 신부님들이 교우들의 발을 씻는 세족례가 진행되었고,
예수님이 수난을 당한 성금요일에는 안토니오를 업고 동네 곳곳을 돌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고, 성야인 토요일 밤에는 어두운 성당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파트릭 신부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다소 슬프고 엄숙한 전례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미 마음이 부활절에 가 있는 교우들의 얼굴은 샘솟는 기쁨으로 피어났다. 그렇게 온전한 성주간을 보내고 부활대축일을 맞이했다. 부활절 월요일엔 Outing 이라고 해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강으로 소풍을 갔다.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되지 않아서 강이라기보다는 도랑이라고 할 정도로 물이 졸졸 흘렀고, 물은 혼탁한 흙빛에 가까운 색이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물속에 뛰어들어 물놀이와 수영을 즐겼다. 한쪽에서는 솥을 걸고, 닭을 잡아서 음식을 준비했고 점식식사는 커다란 쟁반에 밥과 닭고기 소스를 함께 담아서 모두 손으로 먹었다. 물론 손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는 기술이 부족한 '손님'을 위해서 숟가락을 챙겨 주기도 했지만.......
짧지만 또 알찬 일주일을 몽고 벤두구에서 보내고, 우리는 다시 칼로 신부님과 마케니로 돌아왔다. 험난한 여행의 끝에 파김치가 되어서, 칼로 신부님의 또 놀러 오라는 말에 "다음에는 헬리콥터를 준비해 주신다면 갈게요."라고 대답했지만, 세상의 끝, 몽고 벤두구에서의 부활절은 멈춤과 고요함으로 가장 충만하고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