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루는 설 수 없어.
부활절 휴일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인류학 개론" 수업 강의를 하고 저녁때는 학생들이 기본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을 함께 도와주고 있다. 나는 낮에는 언어센터의 중국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현지어 등의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 수강생들과 강사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등 행정적인 일을 보며, 밤에는 강사로 "중국어"수업을 진행하고, 학생으로 "이탈리아어"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대학에 처음으로 언어센터가 생기고, 외국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소문에 학생들이 꽤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정규 학과목이 아니라 따로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소식에 실망하며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사실 마케니 대학의 학생들에게는 수강료 50%만 내면 등록할 수 있는 해택이 있고, 교재비 복사 비용을 빼고 수강료에서 남는 돈은 현지인 강사의 강의료로 지출하는 구조였다. 중국어와 이탈리아어 등 외국인 강사의 강의는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현지인 강사가 가르치는 프랑스어와 크리올어는 강의료를 지불했다. 하지만 돈은 없고, 수업은 듣고 싶은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나는 졸업하고 중국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학비를 낼 상황이 아니라서....... 일단 수강료의 50%만 내고 시작하면 안 될까요? 나머지는 종강 전에 지불할게요." 애원을 하며 수강료를 할부로 내겠다는 학생, "왜 학교에서 이런 수업을 학생들 모두에게 개방하지 않나요? "질문을 던지며 당당히 따지는 학생, 그냥 조용히 방청할 테니 받아 달라는 학생...... 누구든지 원하는 학생은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당장 교재비를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참가인원이 너무 많으면 언어 수업은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첫 번째 중국어 수업에는 이탈리아 학생 두 명(이탈리아어 자원봉사자 강사님들) 페루에서 온 유학생 한 명(마케니 이야기 15화, "페루에서 온 걸리버" 참조) 그리고 언어센터의 광고를 보고 등록한 현지 학생 2명과 본교생 5명 등 총 열 명의 마케니 대학 재학생이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교재비만 계약금으로 걸고, 종강 전에 수강료를 갚겠다는 불굴 의지의 학생은 첫날부터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사실 외국어 수업료 납부 문제는 그저 언어센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총무과의 파카누 선생 방 앞에는 대학 등록금 납부 문제로 길게 늘어선 줄이 끊이지 않았다. 정해진 기간까지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당연히 재적되는데 그 마감기간을 조금이라도 연기해 보려고 학생들은 갖가지 개인적인 사유를 설명했고, 인상 좋은 파카누 선생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불허"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 들은 등록금을 체납하고 수업을 계속 듣기도 했는데, 학교는 해당 학생에게 시험지를 주지 않거나, 결과적으로 학점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마르코가 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수업 중에 등록금, 수강료 등 학비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우리가 등록금을 제대로 내야 학교가 발전하고, 좋은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 있잖아." 하고 말했고, 또 다른 학생은 "학생이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학생 편에 서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이 강사의 입장을 묻고 싶다며,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마르코는 " Empty sack no de di nap."( 빈 자루는 설 수 없어.)라는 현지어로 대답을 하자, 다들 한바탕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빈 자루가 설 수 없듯이 배가 고파서 쫄쫄 굶은 강사는 가르칠 힘이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