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첫 강제 수용소가 있었던,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망자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옥 같은 삶이 생생한 역사로 새겨진 도시. 그래서 감히 그 도시가 평화롭고, 닥하우 사람들이 친절하며, 아름다울 것이란 기대가 전혀 없었다.
예상을 깨고, 닥하우는 꽤 멋진 도시였다. 500년쯤 구도심에 근처에 터를 잡은 Hörmann 가족이 경영하는 독일 비어가든(Biergarten)"세 송이 장미"는 이른 점심부터 문을 열고 하루 종일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오후 세 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 우리 옆의 맥주와 와인을 마시던 두 단골 여자 손님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우리에게 메뉴를 추천해주고, 음식에 달려드는 벌을 쫓는 비결을 가르쳐 준다. 지난번 이곳에서 벌에 쏘여 입술이 퉁퉁 부은 증명사진이 담긴 핸드폰을 보여주며, "벌에 쏘인 수난기"를 공유한다.
1958년부터 경영을 시작했다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엔 가게 주인 부부의 젊은 시절 흑백 사진이 걸려있다. 버스 정류장에도 "닥하우"란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Dah라는 약자로 쓰기도 한다. 웬만한 가게 이름에도 닥하우란 도시 이름이 빠지지 않고 박혀있다. 어둡고 슬픈 기억을 감추거나 망각하고 싶기도 할 만한데...... 그저 그 무게를 감당하며 담담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닥하우 외곽의 Karlsfeld see에 찾아갔더니, 우리 동네 Bruchsee에서 보았던 오리가족이 여기도 있다. 닥하우에 간다고 했더니, 너무 우울한 곳이라며 본인은 한번 가 보았으니 다시 갈 생각이 없다던 루디가 떠올랐다. 사실 우린 루디의 기차표와 숙소도 예약했었는데, 그는 함께 오길 거부했다.
수영복을 챙겨서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하자고 꼬시면, 아마도 다음번엔 그도 함께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