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온 힘을 다해 또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2020년 1월 28일 씀
나는 헬라시대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의 “금세 현재는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문장에 현재의 소중함이 전부 담겨 있다. 주춤하는 사이에, 고민하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이 흘러버려, 지금의 현재가 곧 과거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시간에 매여있는 존재이기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없다. 영화 Arrival(2016)처럼 사람이 언어에 따라 생각하게 되고, 그 언어의 방식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현재 시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체의 의식을 확장시킨다면, 그러한 언어가 실제로 존재하여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라고 말하는 앤의 말은 참으로 위안이 된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마법의 문구인데,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은 변하지 않으나, 이를 받아들이는 주체의 마음가짐 내지 태도의 성장을 도모한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내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통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영화 Arrival조차 미래를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그저 받아들이는 시간으로 그려진다. 미래의 아픔과 고통을 모두 인지하고, 아이러니하게 ‘기억’한다 하더라도 이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 흐름을 현재의 주인공은 받아들인다.
사실 생각한 대로 미래가 그려지는 건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는 말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여기서의 생각이란 미래를 위한 준비를 거쳐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머릿속을 떠다니는 사고의 흐름을 통해 발현되는 예측(foresee)과도 같다. 이 예측은 논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진 않는다. 사람 머리라는 게 모든 고려요소를 인과에 맞게 배열하는데 능숙하지 못하고, 다만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만이 발휘될 수 있는 정도다. 뭉텅이로 대략적인 청사진을 그릴뿐이고, 이것이 미래를 생각하게 돕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도 이 청사진을 그리는 공신이다. 감이 오지 않는다면 대학 학부 시절 수강신청 시작 2분 전까지 자신이 가졌던 자신감을 떠올려 볼 것. 2분 뒤 대기창이 뜨며 똥 같은 컴퓨터 성능으로 인해 수강신청 사이트에서 튕겼을 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짤을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고는 대화명에는 ‘수강신청 망했다’라고 써둘 당신을 그려보라! 간혹 플랜 A, 플랜 B를 짜는 이들도 있으나, 이마저도 망할 때를 대비한 플랜 Z를 짜두는 사람은 아직은 내 주변에서 보질 못했다. 대개 대충 생각하고, 빗나가면 좌절 조금 하고는 털어버린다. 불확실성은 도무지 피할 수 없다.
수강신청이라는 현재는 금세 지나가고, 내 시간표에는 신청학점 6학점(앞으로 12학점쯤 더 넣어야 하는)이 기다리고 있다. 수강신청의 소중함이 2분 속에 담겨있다. 아 학교 가서 수강신청할걸 하면 그건 이미 늦어버렸다. 이제 올클은 과거의 예측으로만 남아있다. 우리는 비단 수강신청만이 아니라 수능, 중간고사, 기말고사, 퀴즈, 공부, 친구들과의 만남, 연인과의 사랑, 가족과의 만담, 직장생활, 회식, 도저히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 속 시간을 산다. 지나간 명절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는지 떠올리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나. 내일은 누군가를 만나겠지, 인터넷을 하며, 신문기사를 읽으며 또다시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겠지.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 또한 미래를 어떻게든 예측하려 발버둥 치는 한 사람의 흔적이다.
고민하는 사이 흘러버린 시간이 과거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고 여긴다 말하는 게 아니고,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우리 인생을 멋지다 예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는 무책임하다. 아무튼 우린 노력했지 않은가? 대충 했지만... 누구든 그럴듯한 계획 속에 현재를 산다. 하지만 현재에 처맞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 가끔 정신적 녹다운 상태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머리 싸매고 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과거가 된 현재들을 끌어안고 현재에 온 힘을 다해 또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가 모여 현재가 만든다는 말은 곧 과거와 지금이 미래를 필연적으로 만든다는 것과 같다. 과거들을 끌어안은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좌절하지 말 것.
매일매일이 미래를 준비하는 순간이지만 현재가 빨리 지나간다는 말에 혹해 현재만을 살려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가 곧 과거가 되고, 과거가 모여 현재를 만들고, 그게 다 미래로 향하는 길이다. 우리는 그렇기에, 미래를 살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