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을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기도 해 보고 순간이라는 찰나가 맞아떨어져서 사랑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아낸 적도 있으며, 하루하루 말라가 바스러질듯한 관심을 주고 시간만 축낸 적도 있다. 전자가 사랑인가 후자가 사랑인가? 아니면 그 어떠한 것도 사랑이 아닌지. 20대 초반 나름대로 사랑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30대의 내가 빠질 사랑에 감히 물음표를 던져본다.
더 단단해진 사랑을 하기 위해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부지런히 채워가야 한다.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응당 자연히 성인답게 어른처럼 사고할 거라 믿었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내 오만이었다. 그 무엇도 노력하거나 겪어보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엉망이었던 연애 일대기가 탄생했다. 감정의 격동을 겪고 일어서니 이제는 가볍게 던져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사랑을 논하기 전에 연애부터 뜯어보자. 여기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기 vs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연애하기' 얼마나 멍청한 질문이냐 하겠지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늘 암묵적인 갑과 을의 위치가 정해진다. 경험상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는 연애를 하기 위한 일종의 대가가 되는 것이다. 을이 싫어 억지로 갑이 된 사람도, 여전히 을의 자리를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을 몹시도 애정한다. 자신을 조각내어 상대에게 맞추고 나누어 주는 일이 진심 어린 애정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단계에서 연애를 하기보단 좋아한다는 호감의 상태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린다. ‘썸’의 위험성이 여기서 등장한다. 남도 애인도 그 무엇도 아닌 사이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나’를 좋아하는지 확신을 얻고자 비공식적인 자격검증 테스트를 진행한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러면 ‘유죄’라는 죄명을 붙이고서는 애인이 되어버리는 무죄를 선고한다.
연애 초반, 친구들과 함께했던 것들의 일부를 애인과 함께하게 된다. 애인은 사랑하는 사람 이전에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아닌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는 것,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절대 먹지 않던 음식을 함께 먹어보는 것. 영화관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보다 내 옆자리가 더 신경이 쓰이는 것. 신발 끝에 조그마한 얼룩이 더 짙어 보여 갈아 신게 되는 것.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하는 것. 기쁘지만 애써 귀찮은 일들이 시작되었다며 내 마음을 속이게 된다.
늘 가까운 연애만 해오던 나로서 잔잔히 얼굴을 마주하는 연애는 익숙지 않았다. 상대가 내 옆에 있는 게 애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있어도 애정을 주지 않던 사람도 있고,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들여다 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애정과 사랑은 마음이라는 한 끗 차이에서 온다. 나는 왜 애정을 갈구했을까. 그렇게 해서 얻은 애정들은 차가웠지만 나를 안도하게 만드는 데에는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지금은 구태여 바라지 않게 되었다. 이걸 깨닫기까지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연애를 하면 늘 듣는 말이 있었다. 왜 너답지 않은 연애를 하냐는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맞아. 늘 누군가를 만나면 편해지기까지 오래 걸렸지. 어색하고 낯선 불편한 시간이었다. 아마 나에겐 연애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오래 연애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애정이라고 표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했던 연애에서는 사랑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서로의 행복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자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별을 견뎌 극복해 내는 시간까지 연애의 일부이다. 헤어지고 연락을 남겨왔던 그들을 보며 아직도 그 시간 속에 살고 있었구나 응답하지 않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도 그와 같았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시간의 수심 속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건 나인지 너와 나였는지 불분명했다. 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우리가 좋았던 거였지. 그때보다 좋은 기억이 생기지 않아서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자꾸 찾으려 했었다. 나도 이제 잘 넣어둘 수 있게 되었고, 없이도 봄을 기다릴 수 있다. 다시 찾아올 겨울에 이따금 떠오르는 너와의 추억에 소란스러워 다시 눈을 감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여태까지 제대로 된 이별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길고 긴 이별의 시간이었다. 드디어 이별을 갤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부끄럽고 쪽팔린 일들 투성이다. 부족함이 있다면 서로 채워가면 된다. 완벽한 사랑이 어디 있고, 영원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있다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 보다 그가 느낄 감정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잘못을 탓하지 않고,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 옆에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갖으려 하지 않고 아끼는 화분을 돌보듯 진심 어린 감정을 내어 보여준다면 내가 뜻하는 사랑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사랑 없이 우리는 살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