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그를 알 때가 되었다

어린이에 관하여

by 고하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채용 공고 앱을 누른다. 내가 놓친 공고문이 더 있을까 싶어서.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고 내가 넣을 수 있는 회사에는 이력서를 다 넣어 본다. 보통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만 제출하면 되는데 간혹 추가 조건이 붙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평 쓰기.


이번에 지원하고자 하는 출판사에서는 총 다섯 권 중 하나를 골라서 쓰면 된다. 내가 고른 책은 <어떤 어른>이었다. 몇 주전 이북리더기를 샀기에 '이북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딱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에는 오디오북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한 번 먹은 마음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바로 집 앞 서점들을 돌아 책을 샀다.


오랜만에 읽는 종이책은 설렘 그 자체였다. 연필을 뾰족하게 돌려 깎고, 인덱스 플래그를 준비한다. 책을 읽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서평 쓸 때 참고해서 쓰고 싶은 부분을 날카로운 흑심으로 긋는다. 마치 엄청난 문장을 발견한 것처럼 세상 예리한 표정으로. 그리고 인덱스 플래그를 옆에 같이 붙여 준다. 오랜만에 독서하는 기분이 난다. 생각보다 책의 두께가 두꺼워서 아직 마무리를 짓진 못했지만, 조만간 서평 쓰기에 들어갈 것 같다.


<어떤 어른>은 어린이를 좋아하는 김소영 작가님의 에세이다. 작가님의 일상 속에서 어린이를 알아가고 이해하며, 어린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난 보육교사로도 일해 보고, 국어 학원에서도 일하면서 아이들을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어린이는 아니었다. 영유아들과 청소년들, 그 사이의 작은 어린이는 알지 못했다. 내 주변엔 어린이가 없었다. 아니, 작가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이는 어디에나 있다. 놀이터, 편의점, 음식점, 카페 등. 나는 대화를 나눌 어린이가 없었던 거다.


올해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정말 어린이가 되었다. 어리지만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원하는 게 있으며 그것을 표현할 줄 안다. 자아가 점점 단단하게 자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들에게 질문을 조금씩 던졌다. 내가 던지는 질문을 하나씩 받고 생각한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어려워하면, 예시를 들려준다. 그러면 아들도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얘기해 준다. 문득 이런 대화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나눌 어린이가 생겨서 좋았던 걸까?


며칠 전 함께 외출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화 많이 내서 미안해'라고 얘기를 했다. 나의 사과에 아들은 '괜찮아. 이제 안 그러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근데 안 하기로 했는데 또 화내면 어떡해?'하고 묻자, '그럼 한 번 봐줄게. 그래도 안 되면 세 번 더. 다섯 번 더. 열 번 더.... 백 번 더'하고 기회를 끊임없이 준다. 부끄러웠다. 고작 이 작은 어린이가 나보다 마음이 더 넓다니.. 이 넓은 마음도 다양한 경험과 상처들로 작아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작아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아들 스스로를 위해 조금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제 아들의 어린이 세상과 나의 어른(이라 쓰고 성인이라 부른다) 세상이 만나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아들에게 필요한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나도 이제 어린이를 알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