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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Jul 10. 2023

미래의 리더십과 조직경쟁력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지구적 질서는 존재하는 가?


   지금까지 인류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 진리는 강자의 논리였다. 그런데 이제 그 강자의 논리가 충돌하는 상황이고 그들의 이해관계와는 별도로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이 같은 강자의 논리로는 지구촌을 안정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따라서 새로운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것도 불과 십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앞으로는 절대강자가 군림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는 과거와는 다르게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고, 군사적으로도 비정규적인 군사력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힘의 논리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쉽게 끝날 것이라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또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이런 강자의 논리가 제대로 먹히지 않은 이유다. 이미 전 세계의 70억 명 정도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이렇게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는 상황에서 지구시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 즉 지구적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지구적 질서 구축은 가능한 일일까?


   사실 이러한 문제제기 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세계 주요 지도자들 입에서 조차 거론되지 않은 주제다. 현존하는 UN의 모습을 보면 현재 지구상에 지구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이러한 지구적 질서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기후위기 극복은 인류의 절대 절명의 과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적 질서가 창조된다면 인류는 다음 문명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종의 길로 가게 되는 아주 분명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달걀로 바위 치는 느낌지만 도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변화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되는 이유는 인류가 언젠가부터 디지털 기술, 컴퓨터 기술을 발전시켜 온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세상은 인류 문명의 지적수준을 광속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통신망의 발달도 경이로워 스마트폰이 출시 된지 2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70억 명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다. 2020년경의 펜데믹 상황은 불과 3년 만에 전 세계 업무 패턴을 아날로그에서 하이브리드로 전환시켰다. 그렇게 확산이 어렵던 원격 교육, 원격 의료의 길이 불과 3년 만에 상식이 되고 말았다. 이제 모든 모임을 온 오프를 활용하는 하이브리드가 되었다. 이런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는 것도 인류 멸종을 극복해야 한다는 상황이라면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할 수 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는 경영활성화를 위해 모든 구성원이 조직의 비전에 잘 정렬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구적 질서도 지구촌의 모든 국가, 기업, 단체 그리고 개인들까지 지구적 선을 추구하는 비전을 설정하고 이에 정렬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차원에서 국가나 기업 그리고 단체들의 경영 방식은 지금과는 다른 비전을 가져야 한다. 우선 비전의 설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국가우선주의, 주주우선주의, 회원우선주의에 입각한 비전 설정이 대부분이었다면 앞으로는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는 가운데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아웃도어 생산업체는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Earth)다’ 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지구를 훼손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일을 통해 구성원과 고객이 함께 성장하면서 풍요로운 공존의 시대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First America가 아니라 First Earth를 표방하고 Global Good을 추구한다면 러시아와 유럽, 중국도 First Earth를 선언한다면 아마도 UN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와 지구적 선이 상충될 때 자국우선주의가 앞서게 된다면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한 전쟁은 어느 한 쪽의 처절한 패배에 의해서만이 종식된다. 사회적 갈등도 지구적 선이 아닌 진영의 논리도 충돌하면 결국 힘의 논리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그리고 풍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지구적 선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진영에서 사용하던 보편적 진리가 지구촌 전체에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종교나 국가의 방향성이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운명공동체인 인류를 위한 인권, 평등, 상호존중 등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게 되면 지금의 정책과 활동이 조정되면서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고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SDX재단은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지구적 선을 추구하는 ESGG 프레임워크를 제안한다.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지구적 선을 추구하자는 ESGG (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는 지구촌의 모든 국가나 기업 그리고 단체 심지어는 개인들까지도 지구적 선을 추구하겠다는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추구하는 방법을 찾아 이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활동계획과 목표 관리 등을 정리한 ESGG Manifesto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스스로 실천하는 캠페인을 제안한다. ESGG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방향을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지향하게 하고 이를 실천한 방법들을 창조적으로 개발하여 이를 실천함으로써 지구적 질서를 구축해 나가자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가 아닌 집단지성의 논리로 세상의 이치를 새롭게 건설하자는 의미다.


    ESGG는 우선 자신의 삶의 의미를 Global Good에서 찾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삶의 목표, 국가의 목표, 기업의 목표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실천방안을 창의적으로 찾아 이를 설계하고 실천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ESGG Manifesto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이를 촉진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보완한다면 머지않아 지구촌에는 국가를 뛰어넘는 지구적 질서가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량만큼 ESGG를 실천하면 된다. 거대한 잣대에 자신을 맞출 필요도 없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지구촌의 일원으로 풍요로운 공존을 위해 자신의 수준에 맞는 Global Good을 실천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지구적 질서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한다.   


   자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조직의 경쟁력을 살펴보자


   Global Good를 염두에 두지 않은 리더는 퇴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국제사회의 복잡성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기후 문제 등 지구적 현안이 점점 더 확대되고 개인들의 사회적 욕구나 위기의식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을 회피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지구적 선에 바탕을 둔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이나 주주 그리고 고객들을 이끌어갈 수 있다. 만약 앞으로도 주주이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리더가 있다면 과연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상상해 보라. 최근에 ESG가 대두되는 것도 바로 재무적 요소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하지만 ESG로는 기존의 국가적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지구적 질서 하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지구시민 모두가 ESGG를 실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도 이익추구를 위해 최적화된 기업이나 자신들의 공동체 또는 국가를 위해 최적화된 조직문화를 ESGG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하는 일은 비슷해도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짐으로써 사업내용이나 가치 그리고 구성원의 삶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렇게 ESGG 조직이 많아져야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그저 우리의 일을 맡아줄 일꾼을 찾지 말고 우리의 비전을 함께 할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조직의 ESGG와 개인의 ESGG를 살펴 뜻이 맞는 그래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파트너들로 조직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인 유연한 조직을 만들 수 있으며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사례는 종교단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신도공동체는 매우 오랜 시간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떤 조직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수명이 수십 년에 불과한 것과 비교한다면 자발적 참여에 의한 조직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이 지구적 선을 추구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조직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하루빨리 모든 조직과 국가 그리고 개인들까지 ESGG를 실천함으로서 새로운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고 풍요로운 공존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멸종을 향해 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문면으로 도약할 것인지 그 선택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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