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하루종일 진행되는 SDX재단의 ‘탄소감축평가관리사 1급 과정’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생각이다.
수업 내용의 핵심은 ‘탄소감축을 체계적이고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LCA(Life Cycle Assessment, 전 과정 평가)다.
환경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인데, 실제로 강의를 통해 접한 LCA는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복잡한 분석틀이었다.
원재료 추출부터 제조, 유통, 사용, 폐기까지의 모든 단계에서의 자원 투입과 환경배출을 정량화하는 이 시스템은 탄소감축이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수치와 데이터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줬다.
하지만 수업을 지켜보며 한 가지 중요한 현실도 마주했다.
“LCA는 일반 시민이나 비전문가가 다루기엔 너무 어렵다.”
바로 이것이 탄소감축 활동이 현실에서 왜곡되거나 비효율적으로 흐르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참석자들과의 토론 중 나온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는 다음과 같다:
오해 1: 생분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보다 무조건 친환경이다.
→ 진실: 농작물 기반 원료 재배, 제조 에너지, 분해 과정의 메탄 발생 등으로 탄소배출이 더 많을 수 있다.
오해 2: 종이봉투가 비닐봉투보다 무조건 낫다.
→ 진실: 종이 생산에는 더 많은 물과 에너지가 들며, 3회 이상 재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탄소가 더 많다.
오해 3: 유리병이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이다.
→ 진실: 무거운 유리병은 운송 중 탄소배출이 많고, 제조 시 고온 소성이 필요해 제조 탄소가 더 크다.
오해 4: 전기차는 무조건 내연기관보다 탄소가 적다.
→ 진실: 배터리 제조와 전력의 탄소 강도를 고려하면 주행거리 5~8만km 이전까지는 탄소 ‘손해’ 구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오해들은 대부분 전체 과정(Life Cycle)을 보지 않고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데서 비롯된다.
탄소감축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가 영양성분표를 보고 식단을 조절하고, 회계 장부를 보고 기업의 건전성을 판단하듯,
이제는 ‘탄소 장부’를 누구나 이해하고, 활용하고, 비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LCA는 탄소의 회계 시스템이다.
탄소감축평가관리사는 그 회계 데이터를 판독하고 설계하는 실무 전문가다.
일반 시민도 그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때, 진짜 감축은 시작된다.
SDX재단의 수업 현장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탄소감축은 신념이 아니라, 숫자로 말하는 윤리다.”
바로 이 ‘탄소 문해력(carbon literacy)’을 높이는 일이 우리가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일 것이다.
앞으로는 탄소회계가 행동을 바꾸고 정책을 설계하며 기술의 방향을 잡는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LCA를 누구나 이해하는 세상, 탄소 숫자가 상식이 되는 사회.
그것이 진짜 저탄소 사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탄소를 ‘숨겨진 비용’이 아닌 ‘보이는 정보’로 전환
제조자에게는 ‘감축 설계 유도’, 소비자에게는 ‘윤리적 소비 유도’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정량적 언어 제공
이를 위해 탄소감축 관련 과목을 중고등학교에도 채택하여 탄소를 숫자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탄소배출이 발생하는 전과정을 살펴 배출이 많은 Hot Spot를 찾아내고, 이에 대한 감축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평소에 건강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고 각각의 재료의 성분이 어떻게 되는 가를 따져 보듯이, 업무 과정에서 또는 제품생산이나 소비 과정에서 탄소배출에 대한 정보를 꼼꼼이 따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토요일 8시간씩 수업을 받느라 지방에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주는 수강생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있기에 기후위기 극복은 조금 더 앞당겨 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