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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박스를 벗어나야 한다.

by 전하진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시간을 쪼개 쓰고, 일을 끝내고, 무언가를 이루면
그게 잘 사는 모습이라 여겼다.


내가 먹고, 쓰고, 지나쳐버린 모든 것들은
단지 내 성공을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그 도구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나는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로등 아래서 태양을 잊었고,
에어컨 바람 속에서 바람의 냄새를 몰랐다.
플라스틱에 싸인 사과를 들고
땅을 만지지 않은 손으로
자연을 안다고 말했다.


나는 자연이 무한한 공급자인 줄 알았다.
언제든 파내어 쓰고,
또다시 끌어올 수 있는 자원 창고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살아온 인간 세상은
자연을 빨아들이고,
쓰다 버린 찌꺼기를 마구 쏟아내는
기괴한 박스일 뿐이라는 걸.


NtvUTf2jzak%3D 15일 정도 쓰레기 수거가 멈춰 도시기능이 마비된 상황, 평상시에는 이 쓰레기가 단지 도시밖에서 우리를 파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자연은

이 박스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안에 갇혀 있다.
박스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자연으로부터 함께 퇴출당할 처지다.


나는 그저,
박스 안의 규칙에 따라
열심히 살아온 것뿐인데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어도 몰랐고,
꽃이 피어도 보지 않았고,
비가 내려도 그저 불편하다고만 여겼다.
모든 것을 외부효과로 넘겨버리고
편리함이라는 장막 안에 숨었다.


그런데

꿀벌이 사라진다.

많은 곤충과 식물이 사라진다.

지난 대멸종과는 다르게

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태계의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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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 박스 안에 비집고 들어온 자연을 보았다.
버려진 나무둥치 위에 피어난 하얀 버섯 하나.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다니.

자연은 그렇게,
죽음을 양분 삼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끝이라 여기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낭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돌고 돌며,
모든 죽음은 다음 생명을 부른다.


나는 멈춰야 한다.

그동안의 상식들이

얼마나 허황된 신화였는지
똑빠로 마주해야 한다.


돈과 효율,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순환을 거스른 결과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자.


그리고 이제는,
자연의 거대한 작동 원리를 배우고
그 질서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기괴한 박스와 함께
영원히 제거되는 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 없다.


변화는 언제나
한 사람의 각성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부터 각성하자.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이 기과한 박스를
자연의 일원으로 전환시키는
기적 같은 실험을 시작해보자.


내 삶을, 다시 돌려보자.

순환의 질서 속으로.
끊긴 연결을 다시 이으며.
상처를 주는 손이 아니라,
보듬는 손이 되어보자.


이 고백이
단지 반성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맹세가 되어

대자연의 일부가 되는

생명체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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