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복력의 시대'

지금 우리는 '효율'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

by 전하진

긴 연휴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두 단어는 ‘효율’과 ‘회복력’이었습니다.


오래전 대학에서 ‘최적화’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산업공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효율’이 인류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로 그 ‘효율’이 초래한 파국적 현실을, 마치 남의 일처럼 힘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설마”,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최근 저서 『회복력 시대』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단지 활용의 대상으로만 여겨 온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자연은 지금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타성에 젖어, 익숙한 방식과 속도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결국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을 공존의 동료로 받아들일 생물종이 과연 있을까요?
지구상에 나타난 지 불과 20만 년밖에 되지 않은 가장 어린 포유류인 인간이
이토록 자연을 파괴하고도, 정작 그 생태계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같은 평범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팬데믹을 떠올려 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의 일상을 멈추게 하고, 탄소배출마저 감소시킨 그 시절을.

그때 자연은, 우리 삶의 방식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시기를 ‘비정상’이라 여기며, 예전의 ‘정상’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상’이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만든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기후위기, 경제위기, 인공지능에 의한 존재 위기까지 겹쳐진 이 시대는,
앞으로 10년 안에 방향을 틀지 못하면 되돌릴 수 없는 미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 내가 무슨 힘이 있어”라는 생각이 익숙해질수록 변화는 더 멀어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합니다.


진짜 변화는 언제나 위기에서 시작되었고,
그 위기에 각성한 평범한 개인들이 모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요.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을 때,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면서 봉건제는 무너졌고
팬데믹 이후, 우리는 불과 몇 년 만에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생활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열어낸 그 경험은 지금도 유효한 자산입니다.


지금 세계의 흐름은, 전쟁, 파국과 같은 극단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함께 극적인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시작은 모두의 각성과 행동,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반의 협력 플랫폼에서 나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효율’, ‘성공’, ‘속도’ 등 익숙했던 상식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회복력’을 기준으로,
‘왜 사는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하나씩 다시 정의해봐야 합니다.


이 나이에 익숙했던 틀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두렵고 무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후세에게 지속가능한 삶의 기반을 물려줄 유일한 길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은 실천 하나라도 시작해보는 것,
그것이 제가 오늘도 다시 뛰려는 이유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전환을 이끄는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