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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서사

새로운 내러티브가 절실하다.

by 전하진

우리는 오래도록 성장, 효율, 경쟁, 지배를 중심 가치로 삼는 ‘휴먼로직(Human Logic)’에 기반한 문명을 설계해왔다. 이 로직은 산업혁명과 디지털 시대를 거치며 경제와 기술을 폭발적으로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기후위기, 자원 고갈, 생물 다양성 붕괴, 사회적 양극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꼽은 ‘행복의 조건’ 1위는 재산이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답하는 아이들. 이 단순한 응답 속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주입해온 휴먼로직의 서사—즉 ‘성공=소유’, ‘행복=경쟁의 승리’라는 관념이 깊이 새겨져 있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장래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경제력과 학업 성적을 기준 삼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를 ‘예측’한다. 이 예측은 다짐이 아니라 체념이며, 꿈이 아니라 계산이다. 이미 ‘가난하면 불행할 것이다’라는 공식이 내면화된 채, 청소년기라는 가장 유연해야 할 시간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준비 구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를 가지고 성년이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가장 우려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소진의 삶이다. 재산이 곧 행복이라고 믿고 달려온 이들은, 결국 도달한 그 지점에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성취는 항상 비교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 잘난 사람, 더 가진 사람을 끝없이 마주치며, 만족은 유예되고 불안은 지속된다.


또한 사회적 관계는 기능화되고, 공감은 약화된다. 가족조차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 안에서, 타인과의 신뢰는 구축되기 어렵다. 청년들의 ‘관계 포기’—비혼, 고립, 고독사 증가 등은 이미 사회적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존재적 공허감이다. 성취는 달성했으나, 정작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들이 맞이하는 중년의 위기.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중년 번아웃, ‘퇴사 후 멘붕’ 현상들은 바로 서사의 붕괴가 낳은 후유증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서사의 전환이다. 경쟁과 소유의 휴먼로직이 아니라, 순환과 공존의 에코로직으로의 대전환이다. 이것은 단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닥친 위기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지구생태계에서 영원히 퇴출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나 국가 그리고 우리 모두 그 동안 인류사회를 지탱해온 휴먼로직에 의한 삶을 극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미 휴먼로직의 위기를 감지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글은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생태적 전환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에코 라이프 실천 인구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우리나라에서 환경친화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에코로직적 삶의 실천자들은 세대, 가구 형태 등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 연령대 측면에서, 전통적인 친환경 행동(분리수거, 에너지 절약 등)은 오히려 고연령층에서 더 활발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60대는 지난 한 달간 평균 3.6개의 친환경 행동을 실천한 반면 20대는 2.8개에 그쳤다. 이는 연령이 높을수록 실생활에서 환경행동 참여도가 높음을 시사한다. 한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가치 소비에 관심이 높고 환경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만 실제 행동은 아직 부족한 경향이 있다. 다만 세대별 선호 활동에는 차이가 있어, 20대는 자동차 대신 도보·자전거 이용 비율이 높고 30대는 제로웨이스트 상점(리필스테이션 등) 이용률이 15.5%로 타 연령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는 젊은 층이 새로운 형태의 친환경 소비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별 및 가구 형태 측면에서는, 친환경 생활 실천에 있어 기혼자나 자녀가 있는 가구가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 한 설문에서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 52.2%였는데, 기혼 가구에서는 60%를 넘겨 미혼보다 높았다. 이는 미래 세대인 자녀를 둔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1인 가구의 급증은 에코 라이프 스타일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15.5%에서 2023년에는 35.5%로 크게 늘었는데, 1인 가구는 한정된 주거 공간과 잦은 이사 등으로 물건을 최소화하는 생활방식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된다. 실제로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었으며, 2014년 개설된 ‘미니멀 라이프’ 온라인 카페 회원 수가 불과 2년 만에 6만 명을 넘기도 했다. 요컨대 도시의 젊은 1인 가구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필수품만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귀촌·귀농 인구는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구구성을 만들고 있다. 귀농(도시 → 농업 이주)의 경우 전통적으로 50~60대 은퇴 세대 비중이 높아 귀농인 평균 연령이 55세를 넘지만, 최근 청년층 귀농이 증가 추세다. 2024년 통계에서 30대 이하 청년층의 귀농 가구 비중이 13.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2년 연속 상승한 수치다. 비록 청년 귀농 가구 수 자체는 전년 1,112가구에서 1,076가구로 소폭 감소했으나, 전체 귀농 중 차지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여전히 귀농 가구주의 약 66%는 남성이며 평균 연령도 50대 중반으로, 귀농층의 주류는 중·장년 남성이다. 귀촌(도시 → 농촌 비농업 이주)의 경우엔 상황이 조금 다른데, 귀촌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45.4세로 귀농보다 젊고 남성 비중은 60.1% 정도다kostat.go.kr. 특히 귀촌 가구주 중 30대(23.4%)와 20대 이하(20.2%) 비중을 합하면 43.6%에 달해, 귀촌은 젊은 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nocutnews.co.kr. 이는 은퇴 후 고향에 내려가는 전통적 귀향뿐 아니라 젊은 세대가 연고 없이 시골에 정착하거나 주말주택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해졌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수준과 교육 수준도 에코 생활 실천에 영향을 준다. 환경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친환경 행동을 더 자주 실천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학원 이상 학력자의 월간 평균 친환경 행동수는 3.7개로, 고졸 이하(2~3개 추정)보다 많았다. 이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교육을 통해 제고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환경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다만 소비 여력과 연결된 가치소비 측면에서는 아직 한계도 보인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질문에 긍정 응답이 37.2%에 그쳐, 절반 이상은 가격 프리미엄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친환경 소비를 확산시키려면 품질·가격 경쟁력이나 인센티브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2. 에코로직적 생활양식별 사례와 트렌드


미니멀리즘: 적게 소유하며 가치 찾기


낭비를 줄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미니멀라이프는 국내에서 에코로직적 생활방식의 한 축을 이루는 트렌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직장인과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확산된 미니멀리즘은 “필요 최저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면서 삶의 여유와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자”는 철학을 실천한다. 실제 미니멀리스트들은 물건을 비우는 삶의 다이어트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찾았다고 말한다. 예컨대 한 실천자는 “6개월간 1톤가량 버리고 나니 짜증과 우울이 줄고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는 변화를 체감했다. 한국에서 미니멀라이프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1인 가구 급증으로 좁은 주거공간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게 된 점, 그리고 전세난과 잦은 이사로 짐을 최소화하려는 필요가 미니멀리즘을 생활화하게 만들었다 특히 “버림의 미학”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성화되어 2010년대 중반 네이버 카페 ‘미니멀 라이프’가 수만 명의 회원을 모으며 관련 경험담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미니멀리즘은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절약과는 달리, 자신에게 정말 가치 있는 것에만 소비하는 가치소비로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monthly.newspim.com. 불필요한 물건엔 돈을 쓰지 않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식이다. 이러한 소비 태도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경향과도 맞닿아 있으며, 미니멀리즘의 확산이 곧 윤리적 소비 트렌드로 연결되고 있다.


로컬라이프와 귀촌·귀농: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살아보기


자연에 가까운 전원 생활이나 지역 공동체 중심의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과거 귀농·귀촌은 주로 은퇴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한번쯤 시골에서 소박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젊은층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실제로 앞서 분석한 통계처럼 30대 이하의 귀농·귀촌 비중이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도 이러한 청년 농촌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 정착자금, 체험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제주도 이주 열풍이나 한달 살기 경험 등이 인기를 끈 것도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지역에서의 느긋한 삶을 동경한 결과다. 2010년대 초반 제주 이민이 붐을 이루어 제주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성지로 떠오른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정부가 운영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도시민이 일정 기간 농촌에 머물며 생활 체험)은 젊은층의 관심을 끌어 귀촌 긍정여론을 높였다.


로컬라이프 트렌드는 꼭 완전히 이주하지 않더라도 도시와 시골을 병행하는 생활로도 나타난다. 농촌진흥청 보고서에 소개된 새로운 형태로 “평일엔 도시, 주말엔 농촌에 머무는 미니멀 귀농·귀촌” 사례가 있다. 이는 도시의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주말에 시골집에서 농사나 지역생활을 즐기는 방식으로, 완전히 귀촌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선택하는 하이브리드 생활이다. 이러한 반농반현(半農半現) 라이프스타일은 농촌 인구유입의 새로운 모델로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도시 내에서도 지역 지향 라이프스타일이 부상했는데, 이른바 “슬세권”이라 불리는 동네생활권 선호 현상이다. 예를 들어 2030세대는 홍대, 성수동 같은 개성있는 지역에서 일하고 거주하며, 멀리 이동하기보다 동네에서 소비·여가를 해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교통으로 인한 시간낭비와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역 커뮤니티에 밀착하는 생활방식으로, 도시형 에코로컬 라이프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로컬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은 귀농·귀촌부터 도시 슬로라이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그 공통점은 대량생산·대도시의 익명성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의 자연과 문화,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비혼과 1인 생활: 새로운 가족관과 소비 행태


비혼(결혼하지 않음)을 지향하는 인구의 증가는 한국 사회의 큰 변화 중 하나이며, 에코로직적 삶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결혼과 출산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게 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혼인율 감소와 초혼 연령 상승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3년 현재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4.0세, 여성 31.5세로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혼인 건수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40대를 맞는 인구 비중의 급증이다. 예를 들어 40~44세 남성의 미혼율은 2000년 4.9%에서 2020년 27.2%로, 20년 만에 5배 이상 뛰었다. 여성도 같은 기간 40대 미혼 비율이 크게 상승하여, 과거엔 드물었던 중년 미혼 인구가 이제 흔한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혼 추세의 배경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개인주의 확산, 경력중시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자리하지만, 생활양식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1인 생활자들은 가족 부양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소비 성향을 보이는데, 이를 나홀로 라이프스타일 또는 솔로 이코노미로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혼자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집에서 친환경적으로 살림을 꾸릴 가능성도 높다. 대가족에 비해 쓰레기 배출이 적고, 대량 구매보다는 필요한 만큼 소량 구매하거나 중고 거래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실제 한 조사에서 10대20대 응답자들은 환경 실천 행동 3위로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이용”*을 꼽았다. 이는 비혼 청년층이 중고나 리필 등 친환경 소비문화에 친숙하며, 물건을 공동체와 공유/순환시키는 데 거부감이 적음을 보여준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소비 패턴이 기존 기혼 가구와 달라져, 가구나 자동차 같은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줄고 대신 여행, 취미, 자기계발 등에 지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경험 중심의 소비는 자칫 과소비로 흐르지 않도록 가치 지향과 균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낭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요컨대 비혼 인구의 증가는 한국 사회의 가족 개념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고 효율적인 삶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생활양식 변화로 볼 수 있다.


가치소비와 윤리적 소비: 돈쓸 때도 지구를 생각한다


가치소비란 제품의 가격·품질뿐 아니라 기업의 가치관과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하여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환경 보호, 노동권, 동물복지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다소 비싸더라도 그런 가치를 담은 제품을 선택하는데, 이러한 경향이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예를 들어,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나 비건 패션 제품, 공정무역 커피 등이 젊은 층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20대 응답자들은 떠오르는 친환경 브랜드로 스위스 업사이클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을 1위로 꼽았고, 30대는 윤리적 생산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떠올렸으며, 10대는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러쉬(Lush)나 자연원료 이미지를 가진 이니스프리를 선택했다. 이는 연령대마다 선호 브랜드는 다르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앞서 미니멀리즘 부분에서 언급했듯, 요즘 소비자들은 “정말 아끼고 싶은 물건에는 투자하지만,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다”는 식의 선택적 소비를 실천한다. 환경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거나, 플라스틱 포장을 최소화한 제품을 찾아 구매하는 움직임도 확산 중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치소비가 주류 소비행태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도 있다. 국내 조사에서 “친환경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3명 중 1명 정도에 그쳤다. 많은 소비자가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비용 부담 때문에 망설인다는 뜻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친환경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는 이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이나 인증제도로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탄소중립 실천포인트제를 도입해 대중교통 이용, 다회용기 사용, 친환경 제품 구매 등에 포인트 지급 등의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 제도에 누적 98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하는 등 호응이 높다. 이러한 지원은 가치소비를 확산시키고 윤리적 소비 시장을 키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슬로라이프와 제로웨이스트: 느리고 적게, 지속가능하게


느린 삶(Slow life)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천 역시 에코로직적 라이프스타일의 중요한 축이다. 현대사회가 빠른 성장과 경쟁을 강조해온 데 대한 반작용으로,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느림의 철학이 각광받고 있다chosun.com. 슬로라이프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찾고, 제철 음식과 친환경 식재료를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누리자는 삶의 방식이다. 국제적으로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으로 구체화되어 전 세계 30여 개국에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도 2007년 전남 담양 창평, 완도 청산도 등을 시작으로 슬로시티를 도입했다. 2016년 기준 한국은 11곳이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nabis.go.kr.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역들은 전통문화와 자연생태를 보전하면서 느린 관광과 공동체 중심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남 완도 청산도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자동차보다 느린 보행 중심 섬생활과 친환경 농업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지역에서의 삶을 체험하거나 이주를 꿈꾸는 도시인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귀촌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제로 웨이스트는 생활 속 쓰레기를 최소화하여 폐기물 없는 삶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플라스틱 오염과 쓰레기 대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특히 2020년대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쓰레기가 폭증하자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하나의 사회적 캠페인으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2020년 팬데믹 시기에 국내 하루 플라스틱 배출량이 전년 대비 14.6% 증가하는 등 폐기물 문제가 악화되자,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과 용기내 캠페인(개인용기 사용)이 활발히 전개되었다woman.donga.com. 전국에 제로웨이스트 상점들도 생겨나 서울, 수원, 제주 등지에서 포장 없이 필요한 만큼 물건을 담아가는 가게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한 제로웨이스트 활동가인 필명 '소일(消日)' 작가의 사례는 이 운동의 확산을 보여준다. 그녀는 2016년부터 5년 넘게 일상에서 쓰레기 안 만들기를 실천하고 그 경험을 블로그에 기록해왔으며, 2021년 초에 출간한 저서 《제로 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가 출간 2주 만에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많은 초보 실천자들이 이 책을 참고해 분리배출, 장바구니 사용, 리필 생활 등에 동참하면서 제로웨이스트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의 생활습관으로 스며들고 있다. 현재 제로웨이스트를 돕는 물품(대나무 칫솔, 고체치약, Beeswax랩 등)도 다양해졌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늘 텀블러 썼어요” 같은 일상 공유가 흔해졌다. 정부와 지자체도 다회용 컵 보증금제, 재활용 정거장 설치 등 정책을 통해 일회용 폐기물 줄이기를 지원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삶은 결과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재사용을 늘리는 생활습관 혁신이며, 미니멀리즘·가치소비와 맞닿아 있다. 물건을 끝까지 사용하고, 안 쓰는 물건은 나누거나 업사이클링하며, 새로 살 때는 환경영향을 따지는 이러한 태도 변화가 확산될수록 순환경제와 지속가능한 사회에 가까워질 것이다.


3. 데이터 기반 종합 분석 및 시사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코로직적 삶으로의 전환은 인구구조 변화와 가치관 변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공식 통계와 정부 부처 자료, 그리고 민간 연구소의 조사 데이터를 종합하면 몇 가지 공통된 인사이트가 도출된다.


첫째, 청년층의 참여 확대다. 환경의식 자체는 전 세대에 걸쳐 높지만, 특히 MZ세대는 친환경 소비와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 향후 주류 생활양식을 바꿀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press.todayan.com. 비혼과 1인 가구 증가는 이들의 소비시장 구조를 변화시켜 친환경 제품, 중고시장, 공유경제 등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청년 귀농 지원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되어 귀농·귀촌 인구 구조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nocutnews.co.kr.


둘째, 생활양식 전환이 곧 환경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리도 이것이 일상에서 손쉽게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전환은 이루어질 수 없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는 환경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막상 불편이나 비용이 따르는 실천에는 망설임이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요구된다. 다행히 정부는 탄소중립 실천포인트제나 다회용컵 보급처럼 작은 실천에 보상을 주는 장치를 도입했고, 현재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일상 행동을 바꾸고 있다rda.go.kr. 기업들도 친환경 제품 개발과 투명한 ESG 경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친환경 기술 혁신을 통해 가격 부담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전환이 쉽지 않으면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SDX재단의 자발적감축목표(VDC ; Volutarily Determined Contribution)와 조각탄소감축체제(MCI ;Mini Carbon Initiative)에 의한 LeadXnow 같은 에코로직 전환 캠페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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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정책적 시사점으로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에코로직적 삶은 단순히 개인 취미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정책, 지역균형발전, 환경정책이 맞물린 주제이다. 예를 들어 농촌 인구 감소 문제를 도시 청년의 귀촌 욕구와 연계해 풀 수 있다면 인구구조 개선과 환경적인 삶 추구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귀농·귀촌 원스톱 지원 플랫폼” 구축 등 청년층의 농촌 정착을 돕고자 하고 있으며kenews.co.kr, 이러한 노력이 농촌 소멸 위기를 완화하면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도시 차원에서도 슬로시티나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을 통해 지역 기반의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면 일자리와 환경을 함께 잡는 효과가 기대된다bravo.etoday.co.kr. 또한 교육 분야에서는 앞서 지적한 대로 환경교육 강화를 통해 생활 속 실천을 늘릴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khan.co.kr. 학교와 대중 매체를 통해 미니멀리즘, 제로웨이스트 같은 사례를 알리고 시민참여형 캠페인을 지속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서사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 기업, 학교 등 모든 조직은 기존의 휴먼로직에 근거한 비전과 전략에 에코로직에 의한 새로운 비전을 접목하여 그 방향과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에코로직적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삶의 질 고민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삶의 서사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할 인프라와 문화를 형성해야 하며, 개개인은 작은 부분부터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실천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인구통계적 변화와 생활양식 변화가 맞물린 지금의 추세는 향후 대한민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환경과 공존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그 움직임이 일시적 실천에서 지속적인 구조적 변화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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