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1톤 감축"이라는 말은 일반인에게는 추상적입니다. 이산화탄소 1톤이 공기 중 어디쯤 존재하는지, 줄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탄소중립의 당위성은 알지만 실천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감축 숫자에 ‘살림의 서사’가 입혀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살림’이라고 하면 보통은 집안일이나 생계 유지 같은 걸 떠올립니다. 하지만 사실 살림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나무는 공기를 맑게 하고, 벌은 꽃을 피우고, 한 생명이 죽으면 그 몸은 흙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키웁니다. 이렇게 모든 생명은 살아있는 동안에, 그리고 죽은 후의 사체까지도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살림’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존재의 이유이며, 이 세상에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언제부터인가 허영과 탐욕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본성이라고 알고 있으면서, ‘사욕’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이처럼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었습니다.
다른 생명들은 서로를 살리며 살아가는데, 인간만은 허영과 욕심, 경쟁과 과시를 삶의 중심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타인을 살리기보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이 ‘정상’이 된 사회가 바로 오늘날의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생명을 해치고, 자원을 소모하고, 타자를 무시하는 구조,
즉 ‘살림’이 아닌 ‘죽임’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살림'의 원리를 무시하고 '죽임'의 원리로 빼앗고, 지배하고, 경쟁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한 결과, 우리는 그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찾기는 커녕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인간 사회도 생태계의 작동 원리인 '살림'을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기후테크 기업 웨스텍글로벌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EcoCCube’라는 제5의 건축자재로 전환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SDX재단으로부터 ‘폐플라스틱 1톤 재사용 시 탄소 3톤 감축’으로 인정받아, MCC(Mini Carbon Credit)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간 5천 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면 총 만5천 톤의 MCC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른 기본 수익(영업이익 15억, EPR보조금 10억)만 해도 25억 원. 여기에 MCC 수익이 추가 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폐플라스틱 처리 방법은 매우 획기적입니다. 구조·콘크리트 분야 4대 국제학회에서 모두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세계 유일의 학자인 서울대 강현구 교수는 이러한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EcoCCube를 시멘트에 이은 제5의 건축자재라고 할 정도로 매우 유용한 기술입니다.
탄소 1톤을 줄이면 지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현실에서는 1만 원의 보상도 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 노력을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탄소감축은 ‘외부비용’으로 취급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탄소 1톤을 줄이는 일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행동입니다.
이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 Sallim Impact Fund(SI Fund)가 조성되면서, 탄소 감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림의 서사’를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펀드는 단순히 감축량(tCO₂-e)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감축 과정 속에서 구현된 에코로직(Eco Logic)—즉 순환, 공존, 자율—의 정도에 주목합니다.
즉, 이 펀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탄소 감축 프로젝트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렸는가?
얼마나 순환적이고, 공존을 촉진했으며, 공동체의 자율성을 회복했는가?”
이와 같은 ‘살림의 서사’에 따라, 프로젝트의 MCC(조각탄소크레딧)를 자산화합니다.
이를 통해 탄소 감축은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전환의 질적 가치로 확장되며,
살림의 서사가 곧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새로운 모델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 어촌마을 주민들이 폐그물과 플라스틱 부표 등을 수거해 만든 EcoCCube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마을공동체 복원과 살림을 실천한 서사라고 판단하여 그 마을에서 감축한 MCC 100톤을 100만원에 구매해 준다면 마을공동체는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1억원의 공동기금이 마련할 수 있습니다. SI Fund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살림서사와 탄소감축량 100톤을 다시 A기업의 ESG 실적으로 팔아서 그들의 살림 활동에 도움을 줍니다. A기업은 제주도 마을의 살림을 실천합니다.
한 펀드의 살림 투자는 마을의 살림이 되고 이것은 다시 기업의 살림이 되는 구조입니다. 즉 살림이 많이 유통될수록 우리 사회는 죽는 사회가 아닌 사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살림'에 더 많이 이바지 한 기업이 번성하고, 그러한 개인들이 진정한 부자가 되는 사회가 에코로직에 의한 생태사회 즉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아닐까요.
이런 사례를 본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렇게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탄소를 줄이면 그 '살림의 서사'를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지역소멸 때문에 골치아픈 지자체들은 새로운 서사에 의해 청년들을 불어모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좋아할 것입니다.
마을 청년들은 살림의 서사가 있는 탄소감축활동의 새로운 모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축분의 액비화라든가, 투수블록으로의 교체작업이라든다 다양한 살림기반의 감축활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정부의 지역소멸예산이 매우 투명하게 사용되는 메커니즘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비전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죽임의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하던 더 많은 '살림' 이바지 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하고, 그에 따른 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거래로 웨스텍글로벌은 연간 영업수익 이외에 부가적으로 MCC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I Fund 입장에서는 단순히 영업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다르게 MCC 수익을 부가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포트폴리오로서 기후테크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SI Fund와 같은 기후펀드들이 단순한 기후기술이나 탄소감축관련 펀드가 아니라 살림이라는 서사를 포함하는 사회전환 펀드로 업그레이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자수익률은 다른 펀드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마치 2000년 대 초의 닷첨 투자와 데자뷔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탄소감축 1톤은 사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1톤이 마을의 협동과 회복의 결과물이라면, 거기에는 에코로직(Eco-Logic)의 서사가 깃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서사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발적인 실천을 이끌고, 공공예산이나 투자자본을 끌어들이는 스토리텔링 자산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숫자나 기술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왜 줄였는가입니다. MCC에 살림의 서사가 더해지는 순간, 그것은 거래 가능한 탄소를 넘어, 생명을 살리는 사회적 통화가 됩니다.
살림의 서사가 있는 탄소 1톤은, 이제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통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