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집단 지성 - 수천 년 동안 한반도의 척박한 환경과 잦은 외침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축적된 공동체적 지혜입니다.
관계적 존재론 - '나'라는 존재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개체보다 전체의 생명력을 우선시하는 세계관입니다.
순환의 미학 - 버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되살려 쓰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는 한국인 특유의 회복탄력성입니다.
관계적 정서 문화 - '정(情)'과 '눈치'를 통해 형성된 미묘한 감정의 네트워크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지만 때로는 개인의 자율성과 긴장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소통 방식입니다.
창조적 적응력 - "있는 것으로 때우기", "이것저것 섞어서 새로운 것 만들기"의 즉흥적 창의성으로, 절대 빈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입니다.
물의 살림 빗물을 받아두는 물독이 있었고, 쌀 씻은 물은 화초에 주고, 국수 삶은 물은 설거지에 쓰며, 마지막 헹굼물까지 변소 청소에 활용했습니다. 겨울철 얼음을 깨서 지하창고에 저장해두었다가 여름철 시원한 물로 사용하는 '빙고' 문화도 있었습니다.
음식 재생의 기술 찬밥은 숭늉이나 누룽지로, 된장국 국물은 다음 날 찌개 육수로, 김치국물은 김치찌개나 냉면 육수로 변신했습니다. 무말랭이는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이 되었고, 고구마순은 말려서 나물로, 호박잎은 쪄서 쌈채소로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귤껍질도 말려서 차를 우려먹거나 천연 방충제로 사용했습니다.
의복과 직물의 순환 한복은 아이가 자라면 치마폭을 늘리고, 저고리를 길게 하여 계속 입혔습니다. 다 입은 옷은 기저귀나 걸레로, 실밥까지 뽑아서 다시 짜서 사용했습니다. 명주실을 뽑고 남은 고치는 솜으로 만들어 이불솜으로 활용했고, 삼베 찌꺼기는 밧줄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연료와 에너지 관리 소똥과 말똥을 모아 말린 '똥벽돌'은 겨울철 난방 연료였습니다. 나뭇가지와 낙엽을 주워다 땔감으로 쓰고, 재는 잿물을 만들어 세제로 사용했습니다. 촛불 심지가 다 타면 새로운 심지를 꽂아 계속 사용했고, 등잔불 기름도 아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공간 활용의 지혜 온돌 밑 구들장에서는 나물을 말리고, 마루 밑 공간은 저장고로 활용했습니다. 처마 밑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말리고, 대청마루는 곡식을 말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장독대는 계절에 따라 장류와 김치, 젓갈을 저장하는 천연 냉장고 역할을 했습니다.
치유와 약재의 살림 뽕잎은 차로, 질경이는 상처 치료제로, 쑥은 뜸과 차로 활용했습니다. 도라지는 기침약으로, 생강은 감기약으로, 마늘은 항균제로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지렁이도 해열제로, 말벌집도 진통제로 활용하는 자연 치유법이 있었습니다.
도구와 기물의 재활용 깨진 그릇은 옹기장이에게 가져가서 쇠붙이로 이어 붙여 계속 사용했습니다. 낡은 빗자루는 솔로, 구멍 난 시루는 화분으로, 밑이 빠진 항아리는 굴뚝으로 재활용했습니다. 나무 젓가락은 빨래집게로, 종이봉지는 여러 번 접어서 다시 사용했습니다.
두레와 품앗이의 노동 살림 농번기에는 '두레'를 조직해서 논밭 일을 함께 했습니다.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를 마을 단위로 순서를 정해 진행했고, 일손이 부족한 집에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집 짓기나 이사, 장 담그기 같은 큰 일도 온 동네가 나서서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오늘 김서방네, 내일 박서방네" 하며 돌아가면서 도우니 개별 가정의 부담이 줄고 공동체 결속도 강해졌습니다.
계와 상호부조의 경제 살림 '계'를 만들어서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았습니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먼저 가져가고, 나머지는 순서를 정해서 받았습니다. 이자는 없지만 신뢰가 담보였습니다. '혼수계', '상여계', '회갑계' 등 목적별로 나누어 큰 경사나 초상 때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졌습니다. 한 집의 흉년은 온 마을이 쌀독을 열어 나누어주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음식 나눔의 정서 살림 좋은 음식이 생기면 이웃과 나누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떡을 했으면 시루째 들고 다니며 나누고, 김치를 담갔으면 양념 묻은 손으로라도 한 접시씩 가져다주었습니다. 제사상을 차리고 나면 음복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고,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온 동네에서 쌀, 된장, 김치를 가져다주어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지식과 기술의 전수 살림 베틀질, 바느질, 요리법은 마을의 년장자들이 젊은 며느리들에게 전수했습니다. "김치 담글 때가 되었네" 하면 여러 집 며느리들이 모여서 함께 담그며 비법을 나누었습니다. 아이들 공부도 글 깨친 어른이 서당을 열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고, 농사 기술이나 수공예 기법도 이렇게 공동체 내에서 자연스럽게 전수되었습니다.
공동 자원 관리의 생태 살림 마을 공동 우물, 빨래터, 방앗간을 함께 관리했습니다. 산림도 공동 소유로 여겨서 나무를 벨 때도 의논하고, 봄철 산나물 채취나 가을 도토리 줍기도 순서를 정해서 했습니다. 저수지나 개울의 물고기도 마을 공동 자산으로 여겨 적당히 잡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의례와 축제의 공동체 살림 마을 동제(洞祭)를 지낼 때는 온 마을이 정성을 모았습니다. 제물 준비부터 제사 진행까지 역할을 나누고, 제사 후에는 음복을 나누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단오, 추석 같은 명절에는 마을 단위로 씨름대회, 그네뛰기 등을 열어 공동체의 화합을 다졌습니다.
돌봄과 육아의 공동 살림 동네 아이들은 모든 어른들이 함께 키웠습니다. "남의 집 아이라도 잘못하면 혼내고, 잘하면 칭찬한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산모가 있으면 동네 아낙들이 돌아가며 미역국을 끓여주고, 홀몸 노인이 계시면 젊은 며느리들이 빨래와 청소를 도왔습니다.
생활협동조합 운동 '아이쿱생협'은 이로운 식품과 지속 가능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협동조합으로 1998년 설립되었습니다. 한살림, 두레생협, 아이쿱 등의 생협 운동은 전통적인 살림의 지혜를 현대 소비사회에 적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어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조합원들이 공동구매를 통해 경제적 부담을 나누며, 지역 농업을 살리는 상생의 경제를 실천합니다.
사회적협동조합과 살림 운동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은 지속 가능한 지역 미래를 위한 시민 사회의 대안 모색 및 성장 지원과 함께 나눔, 연대, 협동의 공동체를 만드는 대안 경제를 연구하고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기업 육성, 협동조합 지원, 마을기업 육성을 통해 지역사회의 자립적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의료복지 살림 운동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처럼 의료, 치과, 한의원, 재택의료, 방문요양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조합원들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운동도 있습니다. 이는 개별 의료기관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우선하는 살림 철학의 실천입니다.
되살림과 재사용 운동 '되살림 사회적협동조합'은 되살림가게, 물품기증, 자원봉사를 통한 지역사회공헌사업을 통해 버려지는 물건들을 되살려 순환시키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 살림의 "버릴 것이 없다"는 철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사회적경제 연대 운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생협과 신협 등이 연대하여 사람중심 경제를 위한 사회적경제 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개별 조직의 이익을 넘어서 전체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발전을 도모합니다.
지역화폐와 품앗이 경제 각 지역에서 운영되는 지역화폐(통장, 두루, 품 등)는 전통적인 품앗이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지역 내 경제 순환을 촉진하고, 상호부조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입니다.
마을공동체 운동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된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동육아, 공동부엌, 나눔카페 운영 등도 전통적인 공동체 살림의 현대적 계승입니다. 개별 가정의 부담을 줄이고 이웃 간 상생을 도모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모두 전통적인 살림의 핵심 가치인 순환, 공존, 상생의 원리를 현대 사회 문제 해결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개별적 소유와 경쟁보다는 공동의 이익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대안경제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물산장려운동과 자급자족 살림 일제가 경제를 수탈할 때 조선의 여성들은 "조선 것을 쓰자", "우리 것을 만들어 쓰자"는 물산장려운동을 펼쳤습니다. 무명베를 짜고, 명주실을 뽑고, 천연염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심지어 성냥까지 직접 만들어 쓰려 했고, 설탕 대신 엿을 쑤고, 외국 물건 대신 우리 손으로 만든 것들을 고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저항이 아니라 생활 자체를 무기로 삼은 살림의 정신이었습니다.
6.25 전쟁 중 피난살림의 기적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여성들은 빈 깡통으로 밥을 짓고, 종이 상자로 이부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통조림 깡통은 냄비가 되고, 낙하산 천은 속옷과 이불이 되었습니다. 설탕 포대는 속바지로, 밀가루 포대는 속치마로 만들어 입혔습니다. 구호물자인 옥수수 가루도 여러 방법으로 조리해서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졌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생명을 이어가게 한 것이 살림의 힘이었습니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 도시빈민의 생존 살림 급격한 산업화로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살 때, 연탄재를 모아 벽돌을 만들고, 나무 상자와 천막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여성들은 집안에서 담배 말기, 성냥갑 만들기, 조화 만들기 등의 부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웃끼리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쌀 한 됫박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극한 상황에서도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뒷바라지한 것이 한국형 살림의 전형이었습니다.
IMF 경제위기 시기의 위기극복 살림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많은 가정이 실업과 파산을 경험했지만, 어머니들은 다시 살림의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외식을 끊고 집에서 음식을 해먹고, 명품 대신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고, 학원 대신 엄마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에 온 가족이 참여해 결혼반지까지 내놓았고,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중고품 시장이 활성화되고, 바꿔입기 모임이 생기는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살림의 창의성이 발휘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방역 살림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살림의 지혜가 빛났습니다. 마스크가 부족하자 집에서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손소독제 대신 알코올로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반찬가게가 문을 닫자 동네 엄마들이 번갈아가며 반찬을 해서 나누었고, 온라인 개학으로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도 이웃끼리 돌아가며 돌봐주었습니다. 집콕 생활 중에도 베란다에서 채소를 기르고, 집에서 빵을 굽고, 발효음식을 담그는 등 자급자족의 살림을 실천했습니다.
자연재해 극복의 공동체 살림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서로 도우며 복구에 나섰습니다. 집이 무너지면 온 동네가 나서서 다시 지어주고, 농작물이 유실되면 씨앗을 모아 나누어주었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나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별 가정의 피해를 공동체 전체가 감싸 안아 회복시키는 것이 한국적 살림의 특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살림은 우리를 지탱해 온 실존적 삶의 기술이자 철학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아이들에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라'고 주문을 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헌법 전문에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
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 "
이라고 적시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는 실천적 의지를 선언한 나라가 있을까요?
인류공영은 살림의 확장이며, 홍익인간 정신의 계승입니다.
지금 인류사회는 바로 이러한 철학이 반드시 필요한 병적 위기 상황이며, 따라서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수 많은 외침과 난관 속에서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경험과 정신적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여 인류공영을 실현해야 합니다. 최근의 K-pop, K-Food, K-Culture의 확산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갈망을 K- 에서 찾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에코로직과 휴먼로직의 모든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이 앞장서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인류를 기후위기, 양극화, 기술위협 등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