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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도시는 안전한가?

뜨거워진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적응 전략과 살림빌리지의 길

by 전하진

인류의 문명은 늘 ‘집적의 효율성’을 추구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는 거대한 메인프레임과도 같았다. 모든 에너지, 자원, 교통, 노동, 소비가 한곳에 집중되었고, 대도시는 국가 발전의 심장이자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거대한 시스템은 그 자체의 무게로 흔들리고 있다.


도시는 고밀도의 인구와 활동을 감당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빨아들인다. 물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끌어와야 하고, 식량은 전 세계 물류망을 통해 운송된다. 쓰레기는 끝없이 쏟아져 나오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만들어낸 열섬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 메인프레임이 아무리 강력해도 한계 용량을 넘어서는 순간 전체가 마비되듯, 도시는 지금 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030년대 이전에 1.5℃를 넘어설 것이라 경고한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특히 도시—의 안전성에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한다. 문명의 심장부로 여겨온 도시는 사실상 기후충격 앞에서 가장 취약하다.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이 더 이상 정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도시의 취약성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난다.


환경 파괴의 집약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발생한다.

열섬 현상: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낮에 열을 흡수하고 밤에도 식지 않아 건강 피해를 심화시킨다.

에너지 의존: 냉방 수요의 폭증은 전력망 붕괴와 정전 위험으로 이어진다.

식량·물 공급망: 도시는 외부 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홍수·가뭄·물류 마비가 곧 생존 위기로 직결된다.

불평등의 심화: 부동산 가격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적 격차를 물리적 공간으로 고착화한다. 저소득층과 노인은 기후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이는 곧 사회 불안으로 이어진다.

정신건강의 위기: 고밀도, 고속도의 도시 생활은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키우며, 공동체 해체와 사회적 결속력 약화를 초래한다.


이처럼 도시는 더 이상 성장의 상징이 아니라 위기와 취약성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메인프레임에서 PC로, 도시에서 살림빌리지로


컴퓨팅의 역사를 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과거 거대한 메인프레임은 한계 용량에 부딪혔지만, PC의 등장은 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 사람, 한 공간에 놓인 소형 단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연산 능력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분산화는 곧 창발을 낳았고, 인류는 AI, 클라우드, 초연결 사회라는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었다.


주거의 미래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여전히 메인프레임 도시라는 낡은 모델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분산적이고 자급적인 새로운 단위를 실험할 것인가. 그 대안이 바로 살림빌리지(Salim Village)다.


살림빌리지: 회복력의 새로운 거점


살림빌리지는 자급·순환·공존을 기초로 설계된 소규모 공동체다. 기후충격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회복력을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적 OS이자 적응 전략이다.


자급 기반 (Zero Basic):
태양광과 저장장치로 최소 전력 자립, 빗물·담수화·재이용을 통한 물 자립, 지역 농업·스마트팜을 통한 식량 자립, 폐기물 순환과 바이오가스화 시스템 구축.


도시 기능의 내재화 (Urban Basic):
원격의료, 원격교육, 디지털 인프라를 마을에 내재화하고, 마이크로그리드로 위기 시 독립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설계.


문화와 공동체 (Culture Basic):
공동체의 살림 서사를 기록·공유하며, 봉사와 협력(봉협) 구조로 의사결정을 운영. 취약계층 보호와 공동 돌봄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내재화.


살림빌리지는 단순한 생존 공동체가 아니다. 탄소 감축 성과를 MCC(조각탄소크레딧)로 발행하고, 공동체 서사를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여 외부와 교환한다. 이렇게 축적된 자원은 다시 마을에 환류되며, 공동체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인류는 감축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뜨거워진 세상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적응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도시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그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우리는 주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 한다. 메인프레임이 아닌 PC에서, 도시가 아닌 마을에서, 인류는 지속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살림빌리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살림’은 단순한 살림살이를 뜻하지 않는다. 서로를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회복의 논리다. 뜨거워진 지구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혜는 바로 이 살림의 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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