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안전판을 갖춘 '살림셀'로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자본주의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거리에 늘어가는 빈 상가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경제 지표들은 단순한 불경기의 신호가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탱해 온 핵심 코어, 즉 '소비력'이 구조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지배·성장·경쟁'의 머니로직(Money Logic)을 맹신해 왔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상품을 소비하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유일한 선순환 모델이었다.
이러한 순환 과정이 과열되면서 자연스러운 소비가 아니라 강요된 소비가 확대되었고,
그렇게 얻어지는 부에 대한 탐욕은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을 이끌었다.
특히 최근의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기술은 생산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의 주체인 인간을 기존의 노동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자본주의 핵심 동력인 소비력의 원천인 소득 절벽에 내몰리는 개인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낼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지만, 정작 그 물건을 사줄 사람들의 지갑은 텅 비어가는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Mismatch)'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소비력의 상실과 극단적인 양극화는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유류세 인상이라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됐지만,
본질은 고물가와 저임금 속에 갇힌 서민들의 소비력 붕괴에 대한 분노였다.
남미의 칠레와 콜롬비아에서는 불평등 심화에 항의하는 대규모 유혈 시위가 일상이 되었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조차 극단적인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을 포함해 올해에만 18개국에서 소요사태가 있었고, 이 중 세 나라는 정권이 교체되었다.
먹고사는 문제, 즉 최소한의 소비력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대중의 절망이 사회 불안의 시한폭탄이 된 셈이다.
이와 같은 '원자자본주의(Atomic Capitalism)'로 파편화된 개인들은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서 주거, 식량, 에너지 비용을 홀로 감담해야 한다.
소득은 불안정한데 생존을 위한 고정 비용은 치솟으니, 소비 여력은 '제로(0)'에 수렴한다.
생존의 공포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소비는 사치다. 이것이 현재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다.
무너진 소비력을 복원하기 위해 돈을 더 찍어내는 식의 양적 완화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노동 소득 없이도 기본적인 삶이 가능한 구조, 즉 '자생적 생존 구조' 위에서 소비력을 재정의해야 한다.
새로운 소비력을 위한 일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AI 등으로 창조되는 새로운 일자리는 돈을 추구하는 일자리라기 보다는 보다 차원이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위한 새로운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해법으로 '살림셀(Salim Cell)'을 제안한다.
살림셀은 '순환·공존·자율'의 에코로직(Eco-Logic)이 구현된 삶의 최소 단위다.
이곳의 핵심은 '제로 베이직(Zero Basic)'이다.
첨단 기술과 공동체의 협력을 통해 에너지와 식량, 주거라는 생존의 필수 요소를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구조를 깨고, 생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외부의 거대 자본이나 임금 노동에 목매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안전판이 마련될 때,
비로소 인간은 공포에서 해방된다.
만약 AI전력 수요 공급을 위한 발전소 건설이나 송전망 건설 예산을
각 지자체에 분산발전을 위한 예산으로 돌린다면 우선 추가 송전망 건설이 불필요해 질 수 있다.
이는 막대한 예산을 지속가능한 인프라 구축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효과를 가진다.
각 지역이 분산발전을 통해 전기를 직접 생산해서 사용하게 되면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 또한 탄소감축에 기여하는 일이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의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송전설비,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향후 수출전략 상품화, 지역소멸 대응 등 다양한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살림셀이 활성화되면 '생존이 담보된 소비'가 가능해진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소모적 소비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향유와 윤리적 교환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것이 '살림·풍요·윤리'를 지향하는 살림로직(Salim Logic)의 소비다.
살림셀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식량이 자급되고, 자원의 순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품앗이를 통해 기초생활이 안정화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 문화를 지향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로부터의 정서적 안정과 기초생활의 안정이라는 경제적 안정을 추구한다.
이것은 생존에 대한 안정감을 마련하자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지만
이러한 생존을 위한 일상을 반복하는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 된다.
살림셀의 구성원은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경제적 이유가 아닌 윤리적인 창조에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는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도시기능(Urban Basic)과 윤리적 창조 문화(Culture Basic)이 자리 잡아 해당 셀만의 독특한 윤리적 가치창조의 기본 단위로서 자리매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살림셀이 다양한 다른 살림셀과 메타셀을 구성하고 이것이 기존의 도시와 연결되면 지속가능한 삶의 구조화가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이 담보된 소비를 위한 살림셀의 구축은 오로지 소비를 위한 불필요한 생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살림제품으로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탄소를 줄이며 지구를 살리는 행위를 '살림 트로피'라는 트로피 자산화하여 기후위기 대응 및 양극화 해소를 위한 멜란트로피로 유통시켜 살림셀 구축에 필요한 자본 유입을 축진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한 방법이다.
살림셀이 많아질수록 지속가능한 삶이 확보되는 개인들이 증가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기후위기에도 대응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동안 자본주의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 복원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살림셀을 통한 새로운 소비력은 의미있는 창조를 위한 소비가 될 것이고 이것 또한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소비력이 사라진 시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디스토피아를 막을 유일한 방파제는 살림셀이다.
원자자본주의의 각자도생을 끝내고, 자생적 생존과 풍요로운 공존이 가능한 '살림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멈춰 선 자본주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