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20년 뒤를 위해 돈을 모을 필요가 없다고??
일론 머스크가 최근 인터뷰에서 던진 화두가 뜨겁다.
그는 "10년, 20년 뒤를 위해 돈을 모을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AI와 로봇 기술이 고도화되면 생산 비용이 ‘0’에 수렴하게 되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극도로 저렴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인류가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을 누리며, 노동에서 해방된 유토피아를 맞이할 것이라 예견한다.
기술의 정점에 선 혁신가의 통찰은 분명 경청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장밋빛 전망을 듣고 있자면,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 한구석을 짓누른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미래가 여전히 낡은 ‘머니로직(Money Logic: 지배, 성장, 경쟁의 논리)’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예측에 대해 나는 살림로직(Salim Logic)의 관점에서 세 가지 치명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돈을 찍어 소비를 강요하는 삶은 자연스러운가? 머스크의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은 ‘생산자’에서 ‘소비 기계’로 축소된다. 일자리가 사라진 대중에게 막대한 배당금을 쥐여주는 이유는 그들의 존엄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자전거가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억지로 페달을 밟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보람과 창조의 기쁨 없이, 오직 시스템 유지를 위해 소비만을 강요받는 삶. 이것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다,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배설만 하는 ‘가축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둘째, 무한한 물건이 쏟아내는 기후위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건값이 싸진다는 것은 곧 엄청난 양의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머니로직은 "에너지만 청정하면 된다"고 믿지만,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다. 소비가 미덕이 된 세상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쓰레기와 엔트로피는 누가 감당하는가. 순환과 공존을 무시한 일방적인 대량 생산은 필연적으로 생태적 재앙을 부른다. 이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에코로직(순환, 공존, 자율)**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길이다.
셋째, 기술 권력과의 양극화 속에서 사회는 과연 안전한가?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생산수단을 쥔 자’와 ‘배당을 받는 자’ 사이의 간극이다. AI와 로봇 군단을 소유한 극소수는 신(God)이 되고, 나머지는 그들의 자비에 기대는 잉여 인간이 된다. 배가 부르니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내 생존의 목줄을 타인이 쥐고 있는 상황은 안정이 아니라 ‘완벽한 종속’이다. 언제든 배급이 끊기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아토믹 캐피털리즘(Atomic Capitalism)’의 디스토피아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머스크의 말대로 머니로직의 끝자락에서 기술이 주는 달콤한 사료를 받아먹으며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의 문법을 만들 것인가.
답은 ‘살림로직’에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성장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Salim) 풍요를 나누며 윤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에너지와 식량, 돌봄을 자급하고 순환시키는 ‘살림셀(Salim Cell)’을 구축해야 한다.
살림셀은 단순한 자급자족 공동체가 아니다.
그곳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돌봄과 창작, 관계 맺음이라는 ‘살림노동(Salim Work) 또는 성숙노동(Maturity Work)이 존중받는 곳이며,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존 주권(Survival Sovereignty)’을 확보하는 기지다.
머스크의 예측대로 노동의 종말은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존엄의 종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하는 기계가 될 것인가, 살림하는 주인이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기술에 압도되지 않고, 기술을 도구 삼아 진정한 풍요와 공존을 누리는 ‘살림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