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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Jan 30. 2022

0.43도 남았다

기후 위기 대응,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0∼2019)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무려 '1.07도'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의 마지노선인 1.5도 상승까지는 이제 불과 0.43도만 남겨두고 있다. 인간도 1.5도 정도 체온이 오르면 고열로 고통 받듯이 이제 남은 0.43도는 인류가 멸종될 수도 있는 숫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같이 탄소를 배출하면 2040년 안에 1.5도 상승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2018년 보고서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결과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20살도 되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종말을 향해 나아갈 지는 오롯이 우리들의 선택에 달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최근에 넷플릭스의 ‘돈룩업 Don’t Look Up’이라는 영화를 씁쓸한 웃음을 지어가면서 본 적이 있다. 한 대학의 과학자들이 6개월 뒤에 지구에 충돌하여 지구를 파괴할 행성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내용인데 6개월 뒤에 행성이 충돌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반신반의 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우리와 오버랩 되면서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고, 미국 대통령조차도 자신들의 정치적 득실만 따져 문제를 해결하려다 결국은 지구가 파괴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는 인류의 저급한 문명 수준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 영화는 현실세계에서 진실이 어떻게 희화화되고 왜곡되는지를 비꼰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바로 10년 뒤에 닥칠 기후위기 상황에 대해 반신반의 하면서 내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사는 모습이 영화 속 그들과 많이 닮아 있음에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지만 공멸에 이르지 않으려면 뭔가 해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임을 우리 모두에게 인식시키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는 주제다. 분리배출을 하라니까 귀찮지만 해 주는 정도랄까. 물론 정말 열심히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런 분들이 많아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효율적인 방법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어마어마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데 진정한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논리를 전개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엇이 최선인지만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거대한 상식 그러니까 탄소배출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산업화 과정에서의 상식을 송두리째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현재의 기후위기 대응은 기존의 상식을 유지한 채 대안을 찾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탄소배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원인은 바로 인간들의 소비 때문이요 이에 부응하고자 커져버린 산업화에 따른 결과물이다. 물론 우리의 욕망이 먼저인지 기업들의 욕망이 먼저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겠지만 아무튼 더 많은 제품과 더 많은 서비스를 원하는 인간들의 욕망과 이들을 자극해 돈을 벌자고 뭔가를 자꾸 만들어 내는기업들의 합작품이다. 특히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활동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10년 뒤면 1.5도를 넘길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 때까지 현재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15억대의 자동차 중에 몇 %나 전기자동차로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선진국은 전기자동차로 빠르게 교체를 한다고 해도 그들이 타던 중고차는 지구촌 어딘가로 수출되어 탄소를 배출해도 괜찮은 걸까. 육류 소비의 경우도 경제 성장으로 인해 그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또한 탄소배출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온갖 상품들도 탄소배출이 주범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들 중에 99%정도는 6개월 안에 쓰레기로 변한다고 만다. 우리 집을 둘러보면 정말 늘 그 자리에서 1년이 넘도록 주인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처박혀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매우 힘든 이야기지만 우리의 상식을 깨지 않으면 탄소배출의 증가는 경제성장과 함께 계속될 것이고 이 상황에서 탄소감축을 위해 노력한 들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을 지 염려가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10년 안에 진정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경제지표가 생산적 성장에 맞춰져 있는 이상 우리는 계속 생산하면서 탄소를 배출해야 하고, 쓰레기도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으로 인해 더 풍요로워지고 편의성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행복지수도 과거와 비교하여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돈을 벌어야 돌아가는 경제시스템 때문에 우리는 그저 더 크고 더 빠른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엄청난 기후위기라는 큰 병에 걸려 다 죽게 생겼는데 그 쳇바퀴를 탄소가 조금 덜 나오는 것으로 바꾸고 조금 덜 돌려서 줄여보자고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해답일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탄소배출이 되지 않은 경제시스템을 창조한다면 어떻게 될까. 탄소배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소유경제가 아니라 경험경제 중심으로 소비와 생산이 늘면 경제성장 지표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생산이 줄고 경험소비가 늘어나 그로인해 지속가능성이 높아지면 경제지표가 좋아지는 새로운 지표에 의한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솔직히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급박하게 기후위기에 대응을 하려면 약이 아니라 수술도 감행해야 된다. 


  아마도 ‘돈룩업’의 미국 대통령처럼 자신들의 코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대부분의 정부는 이런 획기적인 경제시스템 개혁은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내세운 탄소중립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논란이 많다. 아직 상용화도 안 된 기술로 탄소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성장과 소비를 부추기며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으로 과연 10년 뒤에 0.43도를 넘지 않게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돈룩업’에서처럼 결국은 행성과 충돌해 인류가 멸망하는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탄소감축을 제대로 하려면 자동차 사용도 줄이고, 에어콘 사용도 줄이는 게 맞다. 사실 실내 공기를 차게 한다고 내뿜는 더운 열기는 결국 도시를 뜨겁게 한다. 만약 다 에어콘을 끈다면 도시 온도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려면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인 것 처럼 우리도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지구시민 모두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소비를 과감히 반대하고 소유가 아닌 경험위주의 소비를 하면서 경제성장을 위한 생산이나 소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공급이 줄면 당연히 경제지표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 같이 생존하려면 줄여야 한다. 오히려 천재들이 나서 새로운 경제지표를 만드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율배반적인 시스템으로는 근본적이 대책이 될 수 없으며 목표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이 환경학자나 환경운동가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시민 모두가 지금까지 돌리던 다람쥐 쳇바퀴를 거꾸로 돌려야 한다. 덜 쓰고, 같이 쓰고, 안 만들고, 안 쓸수록 행복하고 여유 있고 부자가 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과감하게 기후위기의 주범은 탄소가 아니라 우리의 탐욕이었음을 인정하자. 그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었음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런 병을 고쳐 후대에게 물려주자는 결의를 굳게 다져 보자. 그래서 소유를 안 할 수 록 부자가 되고, 경험을 많이 할수록 전문가가 되고, 지속가능한 소비를 할수록 인정받는 지구시민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 


  만약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게임을 시작해 볼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풍요로움과 함께 기후위기라는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되었지만 이제 디지털 기반을 토대로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화두로 새로운 상식을 창조할 기회가 온 것이다. 신대륙에서 마음껏 말뚝을 박고 새로운 방법으로 부자가 될 기회를 만들어 보자. 더 만들고 더 쓰고 더 배출하는 식의 부자모델은 이제 만인의 지탄을 받는 혐오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지속가능한 소비, 디지털 세계에서의 무한한 경험소비, 새로운 지성적 가치창조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치를 추구해야 부자가 되는 이른바 홍익경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저급한 수준의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면서도 현실세계를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 속에서 탐욕이 아닌 홍익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런 꿈을 현실에 펼쳐야 할 때인 것이다. 이러한 신대륙에서 무한한 기회를 잡는 것이야 말로 나도 좋고 인류도 좋은 일석이조를 이루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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