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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Sep 20. 2022

ESG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K-ESG 정립이 필요하다.


K-ESG가 필요한 이유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ESG에 대한 관심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기업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경영의 핵심사항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재무적 요소 중심의 기업평가 기준이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과 사회(S) 그리고 지배구조(G) 등이 추가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 더 나아가 전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방향성이 요구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ESG 활동은 더욱 큰 비중으로 평가에 반영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익’을 추구해 온 기업들에게 ESG는 비용 발생 요인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예를 들어 환경(E)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화, 원자재의 변경 등 기존의 프로세스를 혁신해야 한다. 또한 사회(S) 역시도 궁극적으로 구성원, 고객, 관계자 모두를 고려하는 경영 활동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 역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거버넌스(G)는 더욱 생소할 수밖에 없는데, E와 S를 잘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지배구조만 투명하면 E 와 S가 잘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의 지향점이 이익추구라면 E와 S에 대한 투자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투명경영 이전에 조직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의된 것이 잘 보이질 않는다.



ESG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G부분에서 왜 ESG를 해야 하는 지 그 방향성과 비전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최 우선과제다. 결과적으로 성과가 나면 방향성이 명확했다고 추론할 수 있겠지만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ESG의 각론을 설계하고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이익’ 추구라는 방향성으로 여하히 인류를 위한, 가깝게는 구성원과 고객 그리고 관계자들을 위한 기여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경우 ‘이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인류애에 대한 '가치'가 우선 순위가 될 수 도 있어야 한다. 기존의 기업의 최우선 목표였던 '이익' 이 위해 '인류애' 즉 '홍익인간'을 내 세울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ESG를 실천할 때 진정한 ESG 실천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ESG 플랜에는 그 뱡향성이 명시되고 이익 이회의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일정액 이상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비전같은 것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우선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금세기 최고의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다.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매출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백신기업, 화상회의기업 등은 매출이 급증하여 많은 돈을 벌었던 것처럼, 기후위기 완화(Mitigation) 또는 적응(Adaptation)을 위한 이른바 기후시장의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확대될 것이 틀림없다. 발 빠른 기업들은 이 시장을 잡기 위해 ESG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이익’ 추구보다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가치’가 우선된다면 고도화되어 가는 고객들이나 사회에서 더욱 존재를 인정받고 지속가능발전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백신을 팔아 떼 돈을 벌면서 가난한 국가에 백신을 기부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돈만 벌었다고 인식된다면 고도화되어가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마도 고착화된 이익추구의 상식을 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ESG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점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인류의 결과론적인 현상이라면 디지털전환(DX)은 진화론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구라는 현실세계는 병들어가고 있지만 인류는 디지털세계를 확장하며 엄청난 집단지성을 만들어나가고 있고, 신체적으로도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생물종으로 진화되고 있는데,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를 두고 ‘호모 사피엔스’ 시대는 저물고 신을 닮은 ‘호모 데우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발 하라리의 예상대로 호모 사피엔스가 이런 진화를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호모 데우스로 진화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획기적인 변화없이 이대로 간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 공룡처럼 멸종을 당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큰 신념 즉 우리는 운명공동체요. 모두가 하나로부터 출발하였으나 결국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이어령 교수는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저서를 통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생명’과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사랑의 자본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지 못한 결과물이다. 한 쪽에서는 굶주리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쓰레기로 고통 받는다. 지구라는 한 몸 안에 생명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영토 확보를 위해 전쟁을 한다. 죽어서 티끌하나 가져가지 못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탐욕으로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생명의 터전을 병들게 한 것이다. 모여서 인간이 되었다지만 흩어지면 다시 우주의 원소로 변하고 말 것을 우리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종교조차도 우주의 섭리대로 우리를 이끌지 못했다. 이제 하늘은 우리에게 자신처럼 행동할 때가 되었다고 주문한다. 마치 부모 밑에 자란 아이들이 출가를 해서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고 행동하는 것처럼, 이제 신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탐욕에 찌든 우리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천 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찰나 같은 순간에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집단지성형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집단지성은 우리를 이해시키고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현재 ESG는 바로 이러한 맥락이 잘 보이질 않는다. 큰 꿈과 비전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정렬하려는 의지가 ESG에 녹아내려야 하는데, 탐욕을 감춘 채 겉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 같다. 그런 ESG는 결국 비용만 축내고 이 세상에도 해롭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기후위기 역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ESG는 Top으로부터 이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깊이 고민하여 자신들의 역량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소비행태, 생산방식, 삶의 의미, 공동체 의식 등 지금까지의 상식을 파괴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ESG는 바로 이런 노력에 대한 평가기준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전과 방향성을 갖도록 하는데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은 매우 유효하다. 펜실베니아대 사회학과의 샘 리처드교수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국가로 우리 대한민국을 지목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은 공동체 중심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엄청난 교육열과, 규칙을 준수하는 문화 그리고 엄청난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하늘의 메시지인 ‘홍익인간’은 우리의 건국이념으로 5천 년 동안 우리의 DNA에 자리 잡고 있어 비록 탐욕에 찌든 삶을 살고 있어도 언제든 툭 튀어나올 수 있는 게 한민족이다. 이런 정신이 BTS, 오징어게임 등 수 많은 한류에 스며있어 전 세계인들의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겉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인류애와 같은 것 말이다. 한류가 인류애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지구촌의 사랑을 받는다면 ESG도 K-ESG가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적절한 ESG의 표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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