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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Nov 21. 2022

성장의 역설

성장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는가?

  우리 시대의 석학이셨던 고 이어령 선생은 2014년에 출간된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는 생명을 무력화는 분업, 생활의 표준화, 생명체보다 우위에 있는 기계들 그리고 자발성에 대한 조직의 우위’에 대해 되짚어 볼 때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지난 백 년 동안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산업문명, 기계문명이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로 되돌아와 이제 불안과 공포의 모습으로 내 자식과 후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생태계의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키고 있는 이 상황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실 인류 문명의 진화는 우리 삶을 양적으로는 풍족하게 했는지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발전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졌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코로나19의 창궐로 비정상적이었던 2020년 전후에만 전 세계 탄소배출 총량이 줄었고, 그 이후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다시금 탄소배출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화는 파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올해 UN연설에서 “인류는 지금 기후 지옥으로 가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유엔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는데 ‘인간의 탐욕적 경제활동은 지구의 대기, 해양, 육지의 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쳐 앞으로 10년 안에 예상을 뛰어넘는 폭염, 가뭄, 홍수 같은 대재앙이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1.5도 기온상승 도달시점을 2052년 무렵으로 예측한 이전 보고서보다 무려 10년 정도가 빠른 2040년경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리니까 불과 18년 후에 1.5도 상승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극단적인 기후현상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자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파키스탄 홍수: 국토 3분의 1 물에 잠겨 | 옥스팜  

   지난 8월 파키스탄은 국토의 1/3이 홍수로 잠겼습니다. 약 3천 만 명의 국민이 피해를 봤고, 도로유실이 1만3천km 정도가 유실되었으며 다리도 400개 정도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가옥 피해도 약 2백 만 채나 된다고 하니 숫자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규모입니다. 인명 피해도 막대한데 사망자는 1천 명이 넘고 부상자는 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는 평소보다 7배 정도의 비가 쏟아진 결과입니다. 조금 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시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도처에서 이례적인 기후현상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더 넓은 지역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로 인한 난민발생, 양극화, 사회불안 등도 발생하게 되며 물류대란, 식량대란 등의 고통도 감수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이런 기후위기 때문에 일상이 고통 속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으로도 계속 경제성장을 목표로 더 많은 탄소배출을 지속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30%의 에너지를 줄이는 친환경에너지빌딩이 개발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빌딩을 수 백 개 더 건설을 하면요. 이게 에너지를 줄이는 것인가요?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탄소배출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탄소중립을 하려는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탄소중립 방법으로 제시된 내용을 살펴보면, ▶신재생에너지 사용 ▶에너지 효율 강화 ▶기후기술 상용화 ▶순환경제 확대 ▶탄소 흡수 수단 강화 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처럼 발전을 계속해 나간다면 탄소중립은 공염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제성장을 멈추고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고 ▶질적인 삶을 추구하고 등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주장은 잘 보이질 않네요. 아마도 감히 지금의 상식을 깨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일지 모릅니다. 전 세계 지도자가 모여 GDP의 지표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틀을 깨고, 홍익을 실천하자고 선포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주 절박하게 그런 날이 오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금 이어령 선생님의 생명자본주의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물론 이어령 선생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석학들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고 ‘이타적 경제주의’라든가 ‘창조적 자본주의’ 등 다양한 용어를 빌려 새로운 상식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탐욕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지구촌 모든 생명체와 공존 공영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낸 우리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매우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정말 절실하게 이런 사랑으로 우리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결국 공멸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탐욕을 하라고 가르친 신은 단 한 분도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그 밖에 수많은 성인들의 가르침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탐욕에 찌든 것은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네요. 하지만 이제 막다른 골목에서 중대한 결정만 남은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탐욕으로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 것인지. 마음을 고쳐먹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풍요로운 사랑 안에서 희망을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면 길이 환하게 보일 것 같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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