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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an 26. 2019

초안에 답이 있다

기획서 쓰기 어려운 이유

쓰면 쓸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획서를 경험한 기획자들이 내심 많이 있을 것이다.


가장 순수했던 순간


ooo에 대한 기획서를 처음에 지시받았을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 즈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그래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라는 정말 순수한 마음과 의욕은 사실 상당히 중요한 'MOMENT'이다.


이 순수한 초심은 마치 갓 발견한 산삼과도 같은 것일 수 있는데, 대부분 이 순간에 가졌던 가장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생각은 머지않아 숱한 장애물에 의해 개박살 나거나 스스로 이상한 자체 필터링으로 오염시켜버린다. 시험시간 도통 모르는 문제에 직관이 작동하여 '그래 아마 이게 정답일 거야'라는 감을 믿지 않고, 나중에 '아냐 아냐 이게 답 일리 없어'하며 답을 바꾸는 순간을 아쉬워하며 채점을 해봤던 경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


초심은 거칠지만 마치 원유와도 같은 것


원유와도 같던 초심이 뭉개지는 건 아주 쉽다. 첫 순수한 마음을 오픈하는 시점은 생각을 문서로 정리하기 시작할 시점이거나, 팀 작업일 경우에는 브레인스토밍을 하거나 아이디어 회의를 할 즈음이다. 아직 본인의 생각이 다들 정리가 안될 시점이다 보니 이것을 누군가에게 잘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첫 아이디어 회의에서 이런 생각은 다듬어지지 않은 엉뚱한 생각으로 치부되거나, 잘못 전달되어 다른 콘셉트로 오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럴 때 누군가의 반응이 시큰둥해진다면, '아~ 이게 아닌가 보구나...' 하며 스스로 그 생각을 접거나, '내가 아직 충분한 조사가 없어서 뭘 잘 몰랐나 보구나' 하는 식으로 그 창의적이고 가능성의 원석이었던 그 생각을 쉽게 포기하게 된다.


브레인스토밍 시간에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건, 시간이 갈수록 자기 검열이 누적되고, 본질을 직시했던 순수한 마음이 오염되기 때문이다. 그 초심을 읽어주고 가능성을 발굴해 줄 인사이트를 가진 주변인이 없다면, 대부분 포스트잇 뭉치 속에서 버려진 아이디어로 휴지통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순수한 초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부터는 뻔하고 뻔한, 어딘가 듣거나 봤던 오염된 아이디어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창의성은 온데간데없고 내 생각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에 좌지우지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원래 하려던 게 뭐였지' 하며 길을 잃기 십상이다.


첫 메모가 중요한 이유


첫 생각을 끄적이던 노트나 메모는 그래서 중요하다. 아직 그 순수함의 흔적과 필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TASK를 받았을 때 떠오르던 상상과 최종 아웃풋이 다를수록 뭔가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 그런 기분, 모두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손이 대변하고 있는 느낌. 내 것이 아니니 애정도 안 가고, 디테일도 떨어지게 된다. 창의성은 이미 내려놓았을 테고...


우리는 모두 모차르트로 태어나지만, 세상엔 모차르트를 찾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설픈 지적질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평가하는 코칭의 문화가 마치 자칫 멘토링으로 포장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앨런 머스크와 같은 상상도 못 할 일을 의미 있게 추진하는 사업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당신 옆의 모차르트는 오늘도 죽어간다


쓸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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