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될 상인가?

왕보다 대군이 좋아


"그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

"왕이 될 상이냔 말이다 관상가 양반"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은 관상가 김내경에게 희번덕거리던 칼을 어깨에 걸치며 이렇게 질문한다. 출렁이는 파도만 볼뿐 바람을 보지 못했던 김내경은 어리석게도 계유정난의 피비린내나는 내일을 통찰하지 못했다. 훗날 과거를 돌이켜보며 이 또한 역사임을 인정하니 왕의 관상은 미리 정해져 있음이 틀림없다.

내 어릴적 꿈은 대통령이었다. 장래희망을 적을 때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늘 대통령을 적어냈다. 괴짜 선생님은 이런 날 쥐어박으시며 "똑바로 안 적을래? "장난하지 말고 다시 적어!" 라며 호통을 치셨다. 성적도 어중간한 상위권에, 소심한 성격이었던 코흘리개 꼬마 녀석이 어이없으셨을 거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 후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전까진 내 꿈은 변함이 없었고, 나름대로 준비도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치권 뉴스를 빼놓지 않게 보고, 신문을 통달하도록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걸 보려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기특하기만 하다.

오늘 근 15년여 만에 국립 현충원을 다녀왔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중대장으로 군 복무당시 정신교육 일환으로 병력을 인솔하고 그 때 처음 갔었다. 그러니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때는 정해진 스케쥴대로 의무적으로 돌았다면, 오늘은 예전부터 꼭 다시 한 번 제대로 참배 드리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왔다.

그간 조선 왕릉은 수도 없이 다녀왔었다. 집근처에 있는 서오릉은 아예 내 전용 산책코스다. 구리 동구릉에 모셔져 있는 태조임금 건원릉부터 조선마지막 왕인 순종이 모셔져 있는 남양주 유릉까지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따라 참배를 다녔다. 지난 겨울엔 강원도 영월 단종임금이 모셔져 있는 장릉까지 눈물의 유배길을 따라 갔었다.

오늘 방문은 근현대사를 함께한 대통령들의 묘를 참배하고 그분들로부터 좋은 기를 받아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목적이 컸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시간상 사병묘역만 둘러보며 청소하고 돌아가 아쉬움이 많은 터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현충원으로 걸어가는데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인지 주변이 너무나 조용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방문객도 찾아볼 수가 없다. 143만 제곱미터, 여의도공원 절반 면적에 해당되는 국립현충원엔 작업자와 극소수 방문객 외엔 나 혼자 뿐이다. 일단 정문 민원 안내실에서 묘지배치도를 받아들었다.

현재 모셔져 있는 네 분 대통령의 묘역은 현충원 맨 안쪽, 즉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중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는 가장 멀고도 높은 곳에 있어서 그곳을 첫 번째 코스로 잡았다.

165,000 위에 해당되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묘역이 가지런히 정돈된 채 따스한 가을햇살을 내려 받고 있었다. 묘역의 슬픔을 알리 없는 까치 한 쌍 만이 묘비와 묘비사이를 오가며 신나게 술래잡기 중이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묘비 앞에 넘어져있는 화병들을 똑바로 일으켜 세워놓는다. 아마도 짓궂은 까치의 장난 또는 비바람에 의해 넘어졌을 테다. 넘어져 있는걸 보고도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일부로 묘역 깊숙이까지 들어가 화병을 세워 놓으며 그분들의 슬픔을 달래고 넋을 위로한다. 묘비 각 기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알 수 없는 이름 석자와 순국장소, 순국일자만이 동족상잔의 비극과 시대적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에 다다랐다. 입구좌측에 대한 애국당 글자가 적힌 키 큰 조화와 일부 참배객들이 눈에 띈다. 입구 방명록에 글을 남긴다.

'경제 부흥의 대통령, 총탄의 아픔은 잊으시고 영면 하소서!'

공과 과는 역사가 평가하리라! 더 이상 주석을 달고 싶지 않다.

간단한 참배 후 김대중 대통령 묘역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당시 운구했었던 운구차량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눈길을 끈다.

김대중 대통령 묘역! 역시나 방명록에 글을 남긴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섬겼던 대통령! 감사합니다.'

98년 3월 7일 육군소위 임관당시 임관식장에서 대통령으로 뵜던 분이라 맘이 더 애잔하고 쓰리다.

다음은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합장묘!

이번 방명록엔 이렇게 글을 남겼다. '혼돈의 시대, 격변의 시대를 이끈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분단의 상징인물임을 지적하기 전에 그분은 자유민주주의를 최초로 도입하고 지켜내신 공이 크시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김영삼 대통령 묘역! 가장 최근에 조성한 묘역이어서 그런지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다. 난 그분이 남기신 유명한 어록을 현 경제상황에 빗대어 이렇게 방명록에 남겼다. '새벽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두운 아침을 밝혀주소서.'

기는 충분히 받았다. 또 가족과도 공유했다. 이제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하든 잘해낼 것만 같다. 김해 봉하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묘역도 조만간 다녀오리라!

난 대학교 초년시절 소위 말하는 열렬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녹두대'라 하여 최선봉에 서서 화염병 및 돌도 투척했었고 독재 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부활을 붉은 깃발아래 외쳤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 장교후보생이 되어 군 생활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국가적 애국심에 불타 사회주의자들을 격멸했었다.

그럼 지금의 난 뭔가? 난 좌도... 우도... 아니요,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자유주의 신봉자도, 민주주의 신봉자도 아니다. 여당인 민주당을 지지하지도, 야당인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저 경제상황이 좋아져 모두가 잘살고, 웃을 수 있고, 안전하고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철저한 시민주의자다.

누가 누구를 욕하고 누가 누구의 허물을 감싸겠는가? 역대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보대통령이나 보수대통령이나 그들의 공과는 각각 있으며 이를 후대가 평가하고 있다. 나또한 허물이 많으며 잘난 점도 넉넉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정저지와' 우물안 개구리가 바라보는 하늘이 어찌 우주전체라며 다른 이들을 책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 부질 없다. 누군가에게 '탓'을 하다보면 결국 내 '탓'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금 경제가 심각한 침체기에 빠져있다. 더 이상 진보와 보수가 당리당락에 빠져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1997년 외환위기를 이겨냈던 것처럼 모두의 지혜를 모아 이 위기를 탈출해야한다.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튼튼히 하여 통일조국의 시대를 준비해야한다. 또한 모두가 질명관리 수칙을 준수하여 코로나 19의 전염과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성군이셨던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처럼 경제부흥, 애민애족, 국가안보를 강력히 이끌어줄 진정한 왕, 우리의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어째든 지금은 현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할 때다.

그러고 보면 난 왕이 될 상은 아니었나보다. 지금부터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그때 선생님이 왜 꿀밤을 때리셨는지도 알겠다. 난 하다못해 집에서조차 왕으로 군림하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 왕 노릇했다가는 이혼감이자 자칫 쫒겨나기 십상이다. 이럴 땐 어부인께 수렴첨정 받는 대군역할이 훨씬 편하고 좋다. 왕 안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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