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동필 여행작가겸 에세이작가 Oct 19. 2020
도선생과 기도
난 철저히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유신론자이기도 하다.
다만 그 신들을 믿지 않을 뿐.
모두 경험에 기인한 결과다.
어릴적 천주교 세례와 기독교 세례도 받을만큼
한때는 성경말씀을 줄줄 외우기도 했었다.
불교도 수계는 받지 않았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셨던 조부모님의 영향으로 염불 테이프를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란 터라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내세우는 신앙적 사상인 '나를 믿어야만 천국 또는 극락을 간다'는 배타적 주장에
반기를 들고 종교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을 했다. 또한 그 세계들마다 벌어지는 집단이기심, 암투, 경쟁, 질투, 강요, 불법등은 어쩌면 이 사회의 병폐보다 더 했기에 신물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철저히 내 자신과 우리 가족, 나를 아는 모든 분들만 바라보고 살기로 했다. 그렇다고 유신론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건 아니다.
그 덕으로 주말엔 그만큼 시간적 공간이 확보된다. 종교에 투자할 시간만큼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사용할 시간이 늘어난것이다. 그 시간을 여러모로 톡톡히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 집에 발이 묶여 있는 날이 많다. 오늘은 제법 굵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중창을 뚫고 안방까지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침대에서 뒹굴기를 반복하다 끝내 유혹을 못이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집근처 도보 5분 거리에 진관사와 북한산 등산로가 있다. 주말이면 예불객또는 등산객들로 인해 아파트앞 도로는 몸살이 난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많이 한산하다. 우산위를 때리는 빗소리 장단을 들으며 진관사로 향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지금 이 소리가 너무 좋다. 몇 남지않은 벚꽃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흩날리며 도로에 떨어진다. 내게 올 봄의 마지막 꽃길을 선사하는 듯하다. 금세 도착한 진관사.
석가탄신일을 얼마남지 않아서인지 연등이 진입로부터 길 양쪽으로 주렁주렁 설치되어 있다. 비를 축축히 맞고 서있는 진관사가 오늘따라 유달리 외롭고 고단해 보인다. 족히 천년을 넘게 이 자리에 서서 많은 중생들을 위로해주었을거다. 그 고달픈 세월이 그려진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서니 연등꽃들이 만발하게 펴 마당위를 덮고 있다. 그윽하고 고요해서 좋다. 대불상앞에 서서 가볍게 예를 표한다. 무슨 종교든 신앞에 서면 인간은 미미한 존재일뿐이다.
습관처럼 대웅전앞을 지나 우측 뒷편에 있는 칠성각으로 향한다. 드문드문 방문객들이 보였지만 뒷길은 인적이 끊겨 있었다. 칠성각은 백초월스님이 3.1운동 당시 피에 젖은 태극기를 숨겨두었다가 최근에 공사중 발견된 곳으로 유명한 조그마한 법당이다. 진관사에 오면 난 늘 이곳을 빼놓지않고 방문한다. 이곳을 지나 예불당, 기념품 판매장, 공양식당을 거쳐 집으로 복귀하곤 한다.
뒷길로 들어서 칠성각 앞에 도착하는데.
검은 우산을 내려쓰고 상하의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쪼그려앉아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곳은 야외 복전함 앞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긴 쇠꼬챙이를 이용해 복전함 내의 지폐를 꺼내려는게 아니던가? 얼마나 집중하는지 내가 뒤에 서 있는줄도 모른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거기서 뭐하세요?" 했더니
"아니요, 돈이 안들어가서요." 적잖이 당황하며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다.
"쇠꼬챙이는 왜 쓰신 건데요? 했더니
"돈이 걸려서요" 라며 기가 찬 대답을 한다.
그러더니 지갑을 열어 천원 한장을 복전함에 넣고 가볍게 합장한 후 부리나케 자리를 뜨는게 아닌가?
누가봐도 돈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난 미련하게 사진 찍어 증거 확보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황당함에 살짝 얼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영락없는 도둑놈 복장(상하의 검은옷, 검은 모자. 검은 우산)을 한 그 놈을 쫒아 따라갔다. 그런데 기념품 판매장을 돌았는데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게 아닌가? 대체 어디로 숨은걸까? 여기저기 둘러봐도 없다. 종적을 감춘것이다.
난 곧바로 기념품 판매장에 들러 관계자분께 현재까지 상황을 신고했다. 인파가 많아 그 속에 섞여버려 못찾은것도 아니고 당황스러웠다. 도둑놈의 손과 발은 우사인볼트보다 빠를 듯 싶었다. 관계자분은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내게 감사함을 표하셨다. 불쌍한 도선생! 그 얼마나 된다고 신성한 곳에서 돈 훔칠 생각을 다했을까? 인생이 참 가련하다.
허탈감과 흥분감에 집으로 향해 내려오는데 사찰에서 심어놓은 꽃밭에 이름모를 노란 꽃 하나가 활짝피어 비를 흠뻑 맞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도 이렇게 부처님 미소를 꼭 빼닮았는지. 마치 아까 그 도선생을 나더러 용서해주고 편히 집에 돌아가라며 따뜻하게 배웅해주시는 듯 싶었다.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너그러운 맘으로 용서해주신 미리엘 신부처럼 부처님을 닮은 그 노란꽃은 도선생을 용서하고 있는 듯했다.
도선생은 집에 돌아가서도 맘이 편치 않으리라.
한 낱 지폐 몇 장에 자신의 양심을 훔쳤고, 부처님의 성전을 더럽혔으며, 뜨거운 지옥불행 티켓을 예약했으니 오늘 밤 잠은 다 잤을테다. 그래도 부처님은 이 모든걸 용서하겠다며 자비를 베푸실테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불쌍한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실거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용서! 그러나 난 아직 용서가 안된걸 보니 성인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도 좀 해봐야겠다.
"신이시여, 도선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고 저와 가족도 보살펴주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