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공간에서 일하는 공간으로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재택근무. 뱅크샐러드에선 지난 화요일(25일)부터 전사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오늘은 지난 며칠간 재택근무에 적응하며 겪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그라운드 룰
차질 없는 업무를 위해 회사와 팀이 지켜야 할 룰을 정의되고 공유되었다.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공통 룰과 팀에서 개별로 적용하는 조직 룰이 존재했다.
우선 공통 룰, 시프티(Shiftee)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출퇴근을 관리한다. 슬랙(Slack)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커뮤니케이션 중 20분 내에 회신(슬랙/전화/이메일)이 없을 경우 결근으로 간주한다. (20분 내 회신 룰이 제법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론 30분 이상 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사전에 공유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직 룰은 개별 적용이라 상이한 점이 있었지만 모두가 출근하는 열 시쯤 팀별로 데일리 미팅(화상 회의)을 진행한다는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줌(ZOOM)을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행아웃(Hangout)을 이용해 회의를 진행했다.
업무 시작
우선 집에 대해 언급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화요일은 이사한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편이라 회사로 걸어서 20분 거리로 이사한 참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짐이 제법 있었고 집에 있는 가구라곤 침대가 전부였다. 말 그대로 집은 잠자는 공간. 업무를 위해 준비된 건 회사에서 가져온 노트북 한대가 전부였다. 이 최첨단 머신을 침대 위로 들이는 순간 일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8시 40분쯤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잠옷을 입은 채로 노트북을 들고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8시 55분. 시프티를 켜서 출근 요청을 했다. 평소처럼 슬랙을 살피고 이메일(Spark)을 확인한 뒤 지라(JIRA) 티켓을 정리하고 풀 판다(Pull Panda)가 알려준 PR을 리뷰했다. 이때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자세가 뒤틀리기 시작할 때쯤 슬랙에서 구글 캘린더 봇이 회의 시작 5분 전을 알렸다. 봇이 제공하는 링크를 타고 행아웃으로 접속했다. 에어팟 프로를 착용하고 회의에 입장했다. 저마다 낯선 풍경을 뒤로 한채 네모난 화면에 얼굴을 내비쳤다. 마이크와 영상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인사하며 시작. 각자가 맡은 오늘의 업무를 공유했다. 회의 중에 아이가 난입(?)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30분 정도 회의를 마치고 각자 업무로 복귀했다.
침대 앉아서 일하는 건 고역이었다. 중간에 자세를 바꿔보고 반쯤 누워도 보고 무릎을 세워 노트북을 올려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일했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에선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을 지양하길 권했지만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 익숙한 자세로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오후 반나절은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프티로 퇴근 요청을 하며 업무를 마무리했다.
환경 세팅
상황이 상황인지라 카페에서 계속 일할 순 없었다. 집에서 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일주일 전에 주문해둔 책상이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의자와 책상을 전동 드릴 없이 손으로 조립하느라 낑낑댔다. 그렇게 사무실 환경을 구축하면서 첫째 날 저녁 시간을 보내고 수요일을 맞았다.
비슷한 템포로 일상을 시작했다. 15분 전에 일어나서 씻고 1초 만에 출근. 이번에는 책상에 앉았다. 익숙한 프로세스를 마무리 짓고 화상 회의에 들어갔다. 조금 더 안정적인 업무 환경 탓인지 동료로부터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조명을 적절하게 배치한 탓도 있었다. 침대에서는 주황색 조명을 썼고 책상에선 백색 조명을 사용했다. 사소하지만 조명의 변화는 둘째 날부터 시작된 화상 회의 녹화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분명 조명까진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남아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이어폰.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깨닫는다고 했던가. 키보드와 마우스가 그랬다. 다음날부터 재택근무가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노트북만 있으면 어려움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렵진 않았다. 집에는 24인치 모니터가 한대 있었고 둘을 연결에서 사용하면 훌륭했다. 하지만 온종일 일하기에는 불편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적응된 탓이었으리라. 집에도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었지만 회사 노트북에 붙여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가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모셔왔다.
일을 하는 중에는 회사에서 받은 에어팟 프로를 사용해왔다. 음악을 들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회의를 하며 말을 했을 때가 불편했다.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는 유닛이 다소 커 귀에 쏙 들어가지 않은 탓에 말하는 동안 귀에서 유닛이 계속 흔들렸다. 이는 통증으로 이어졌고 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회의가 많을수록 힘들었다. 조금 작은 유닛을 가진 이어팟(유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통증은 덜했지만 장시간 착용하기엔 무리였다. 결국 회의 때는 이어폰을 한쪽씩 번갈아가며 끼고 회의 외에는 이어폰을 일절 착용하지 않았다. 회의를 위해 귀를 적절하게 쉬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힘든 점과 좋은 점
자취생 입장에서 혼자 일하면 외로움을 느낀다. 집에 있는 생명체라곤 물고기 한 마리와 스투키 하나. 회사에서 마주한 수많은 생명체에 비해 한 없이 조용한 친구들이다. 물론 화상 회의를 통해 또 다른 생명체를 마주하지만 가상의 현실은 한계가 분명함을 깨달았다. 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퇴근하면 집을 나서서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이 지구에 내가 홀로 남겨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반면 나 홀로 말하는 생명체인 상태로 집에 있으면 집중 시간이 길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택배 아저씨가 아닌 이상 누구도 집중을 깨지 못한다. 이를 깨닫고 나서는 오히려 지라 티켓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계획한 일정대로 티켓을 하나씩 쳐낼 수 있었다. 덕분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성취감은 외로움과 맞바꾼 대가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외로움을 잘 다룰 수 있다면 재택근무가 효율이 높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재택근무 계속할만한 거 같아?
재택근무 나흘째, 친구들로부터 재택근무를 계속할만한지 질문을 받곤 했다. 대답은 해볼 만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계속하고 싶진 않다는 것. 현재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매일 재택근무하는 건 감정적으로 지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서 업무 효율을 높여서 성취감을 얻을 순 있지만 개인적으론 함께 일한다는 느낌이 결여된 상태로 일한다면 그리 오래 일하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혼자 사는 자취생의 삶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엉뚱하지만 결론은 코로나 사태가 어서 마무리돼서 사무실로 출근하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것.
Photo by Aleksi Tappur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