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을 다시 생각하다

젠더·어팩트 총서 01 [약속과 예측: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를 읽고

by 김하종

한국사회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들은 각자도생 하면서 오랫동안 '고립된 존재'로 살아왔다(294쪽).
자신의 꿈보다 자식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 당신의 행복보다 자식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라던 우리 엄마, 생신선물로 올리브영 상품권을 받으셔도 당신의 화장품을 사지 않고 아들 화장품 사는 데 다 써버리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치활동의 역사는 짧지 않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열사의 활동, 민주화운동 시기 민가협, 유가협, 그리고 최근에 결성된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 이르기까지, 엄마들은 자녀의 죽음과 피해를 대리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294~295쪽). 그들의 정치활동의 시작은 '자녀의 죽음'이었고, 끝마저도 '또 다른 자녀의 죽음'을 막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온라인 공간이 등장한 뒤, 구체적인 이슈에 대한 엄마들의 집단적인 행동은 더욱 빈번해졌다. 최근 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기혼 유자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거나, 여성의 삶을 제약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일차적인 돌봄 책임자로 지목되며 고립된 존재로 살아온 엄마들이 서로 연결되어 실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모성'은 어떻게 새로이 사유되고, '돌봄'의 문제는 어떻게 이슈화 되었는지를 보여준다(295~296쪽).


모성신화가 여성의 경제적/정치적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그 권리를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에서 '개인'은 삭제된 채 '어머니'로서의 삶만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지적한다. 특히, 모성적 사유가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가는 패러다임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신선하였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이들의 실천이-주의력, 리얼리즘,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갖는 정치적 가능성은 군국주의와 대별되는 평화의 정치학으로 확정될 수 있음을 주장한 사라 러딕.


모성 경험을 근거한 여성들의 활동이 이성주의적 시민권 모델을 돌봄과 공감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남성의 권위주의와 배제에 맞선 여성들의 도전을 가능케했다고 보는 프나니 워브너.


아랍의 봄 당시 여성활동가들이 가부장제와 협상하고 때로는 전통적인 모성을 동원하면서 이집트 민주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 아느와 무하진과 크리스털 웨스톤.


정치적 모성은 아이를 보호하는 모성으로서의 위치를 넘어 시위대를 독려하고, 국가폭력에 노출된 시위대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군대 및 국가권력과 결탁한 기관들을 부끄럽게 만듦으로써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 데 기여하였다(296~300쪽). 물론 우리나라 민주화운동(특히 6월 항쟁 이후) 과정 속에서도 동일한 서사를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억압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모성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모성의 정치적 가능성에 주목하고는 있지만 결국 정치영역에서조차 '개인'이 아닌 '모성'으로 표상된다는 한계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함께 돌봄'의 정치, '집단 모성', '사회적 모성'으로의 확장을 통해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트론토는 남성과 특정 계급에게 부여된 돌봄 무임승차권을 회수하고 민주적 다수를 통한 '함께 돌봄'의 정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였다. 누구나 돌봄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민주적 돌봄의 제도화가 사람들의 삶과 민주주의 향상에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302쪽). 이에 우리는 돌봄 노동상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돌봄 민주주의의 정착/확산을 통해 돌봄에 근거한 정부 및 사회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다.


이제 엄마들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라나는 데에는 부모의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사회의 긴 노동시간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대신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깨닫고만 것이다. 이는 긴 노동시간이 독박 육아와 여성에 대한 노동시장 내의 저평가, 엄마의 경력단절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간파했다(317쪽).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타인의 돌봄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 노동을 천대하고 돌봄 노동자를 폄하해왔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돌봄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인간은 갓난아기 때 잠깐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 어느 때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기존의 생물학적 모성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모든 성인과 국가 및 사회 시스템까지도 집단 모성의 주체로 지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집단 모성이 구현될 때,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구조로 변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신뢰가 회복될 것이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 보다 인간적이고 평화로운 공생과 관용의 정서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313쪽).


국가는 낮아져 가는 '출생률'을 높여보겠다고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이미 과중한 '사회적 노동'에 또 다른 '노동'을 얹어주는 것, 그 이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에 과중하게 부여되었던 '사회적 노동'을 줄이는 것이다. '사회적 노동'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은 지금까지 등한시했던 '가사노동',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2021년, 올해부터는 '주 52시간'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한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할 때다. 우리의 '노동시간' 안에 GDP의 증가로 표상되는 경제성장이라는 화려한 불빛 아래 가려져 있었던 '숨겨진 노동', '돌봄 노동'을 포함할 때가 온 것이다.


* 해당 게시물은 젠더·어펙트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