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늦봄의 편지

여전히 유효한 늦봄의 뜻

by 김하종

온통 사랑으로 가득차 한 평생 사랑을 실천해 온 한 인간,

문익환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삶은 한마디로 온통 사랑덩어리였습니다.

겨레 사랑과 생명 사랑, 두 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 아드님의 회고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우리 분단 50년을 넘기지 맙시다. 분단 50년을 넘기는 것은 민족의 수치입니다."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돌아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10쪽).

1995년에는 정말 통일이 될 것이라 믿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분단 75년이 넘는 지금, 그가 있었다면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늦봄의 뜻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에게 민족통일은 보리밥의 꿀맛과도 같았습니다(93쪽).

자유를 앗아간 감옥 안에서도 검열에 걸리지 않았던 소리,

보리밥의 꿀맛을 하루 세 끼니 맛보는 즐거움.

민족통일의 기쁨은 이미 목사님의 가슴 속에, 입안에

담겨있었습니다.


북녘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이는 한결같은 진리일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정은 막을 수 없습니다(121쪽).

이해관계도 이념도 이데올로기도.


고위급 회담장에 마주 앉은 남과 북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우정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일까요?

그것이 비현실적인 낭만이라면 민간인끼리 우정을 키우는 일을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가 북쪽에 가서 만나온 사람들에게 우정을 느낀다면,

이건 역적이 되는 일일까요?


우리가 수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수많은 선언들을 해도

서로를 겨눈 총칼을 내리기가 그렇게도 힘든 이유는

우리에게 이해관계를 초월한 우정이 없어서는 아닐까요?

우정은 곧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정이 싹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자주 보며 오순도순 얘기도 나누고 지키고자 한 약속은 서로 지켜 신의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통일이나 평화를 위한 노력 그 이전에

우애를 다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양심 때문에 괴로워한 분이셨습니다.

양심이란 '아픔을 아는 마음'이라는 말씀에 너무도 공감합니다.

그것도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는 마음말입니다.


양심은 개인적인 것도, 영웅적인 것도 아닙니다(196쪽).

같이 아파하는 양심은 공동체적인 마음입니다.

사회성을 띠지 않은 양심, 순수히 개인적인 고고한 양심은 허위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의 양심을, 인류의 양심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사회를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과

구석구석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회학적인 분석, 비판, 종합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라야 양심은 양심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갖추지 못한 양심은 개인적인 도적적 감상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양심 때문에 문 목사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민중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늦봄의 뜻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운동을 지속하게 합니다.


민주도 통일도 자주도 그 핵심은,

민중의 생존자체입니다(198쪽).

민주, 통일, 자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명제입니다.


지난 20세기 자유와 평등의 대결은

급기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쓸어버릴 핵무기 대결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241쪽).

인류는 자유와 평등의 갈림길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유 없는 평등은 없고,

평등 없는 자유가 없다는 깨달음에 다다랐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생명이라는 근원에 돌아가서 하나임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으로 돌아가 보면, 모든 사람은 목숨이 하나씩이라는 존재 자체의 평등으로 돌아갑니다.

자유는 생명의 조건이요, 의미이고 여기에 서서 보면, 그동안 벌려온 자유와 평등의 대결과 싸움이

얼마나 무의미한,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싸움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사상과 이데올로기도,

정책적 도구도 민중의 생존과 생명 그 자체를 앞설수 없습니다.

'생명 철학은 책장이나 뒤지면서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온몸으로 살아가면서 하는 것'이라는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처럼 수많은 이론과 사상은 운동의 원천이자 무기가 될 수는 있으나

현장에서의 실천과 행동없이는 너무나 공허하기 마련입니다.


민주도, 통일도, 자주도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양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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