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꿈꿨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대학만 가면 살이 빠진다느니, 대학만 가면 완전히 인생이 바뀔 것처럼 유혹하던 어른들의 거짓말이 깨지는 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정체모를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온 지난 시절을 되돌아볼 여유도 없이 학점과 취업, 20대에게 주어진 또 다른 실체 없는 목표를 향해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되도록 덜 흔들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요즘엔 사춘기보다 오춘기, 육춘기가 더 무섭다고 하더군요. 어린 시절 충분히 방황하지 못한 사람들은 긴장해야 합니다. 언제고 인생이라는 깊은 고민 구덩이에 빠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취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기를 바랐던 그 친구의 마음은 아마도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 몸이 보내는 SOS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왔다고들 하지만 그 사명을 깨닫게 되기까지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명료하게 적힌 체크리스트를 받아 들고 이 세상에 나오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쉬어갈 시간은 아주 절실합니다.
그럼, 대체 쉰다는 건 무엇일까요?
쉰다는 건
때 묻은 페르소나를 벗겨내고
본래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정말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정말 있다면 우리 인생에 쉼표 하나쯤은 필요합니다.
쉰다는 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기뻐하는 일입니다.
쉬어갈 시간이 있어야 내 삶에 감사할 시간도 생기는 것이겠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지 마세요.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줄도 모르고 뛰고, 뛰고, 또 뛰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살아있음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쉰다는 건
일하지 않고도 모두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가 고통받지 않도록 베풀어 주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도 되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주변 사람을 돌볼 여유가 생길지 만무합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직장에서 팀 내 불화가 생긴다면
그 구성원들이 진정 '쉼'을 보장받고 있는지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먹고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나서서 보장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더더욱 '쉼'의 절실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쉼'은 '베풂'의 충분조건입니다.
다만 그 '쉼'이 참일 때만 가능하지요.
제대로 쉬어야만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꼭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애들이 공부를 못한다던 말은
적어도 이 사회에서 거짓말입니다.
쉬는 시간, 자투리 시간마저 전부 할애해서 공부해야만 하고,
꼭 써야 할 휴가마저 반납하고 일해야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지요.
더 잘 살아보려고 일터에 나갔다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거나
일하다가 다쳐도 해고당할 걱정 때문에 치료도 못하고 출근해야만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