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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Jan 21. 2021

미안해요 리키

누구도 일터에서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2020년 한 해동안만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추석 전에만 7명이 돌아가셨고 모두 30~40대  젊은 노동자였다. 추석 전 택배노동자들의 ‘분류작업 거부’ 선언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이라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부와 택배사들은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류작업 인력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거나,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만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추석 이후 과로사가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국민들의 지지여론에 못 이겨 택배사들은 과로사에 책임을 통감하는 것처럼 연이어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 지금까지도 대책 이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서울지부와 진보당 서울시당은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단'을 꾸려 매주 토요일마다 현장으로 가서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실제로 보니 섬뜩했다. 침대 위에서 클릭 하나로만 물건을 받아보던 편안함 뒤에 숨어있는 과정 속 택배 노동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가 그나마 숨 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로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연한 기회로 택배 트럭에 동승하여 마포구 공덕동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택배 노조 조합원 동지가 배송을 하는 동안 27일 사회적 총파업을 알리는 선전물을 나눠드리는 실천을 했다. 동남권물류센터에서 이행점검단 활동을 하는 동안 한 택배노동자분으로부터 택배의 생리는 좀 알고 이런 활동을 하는 거냐며 역정을 들었다. 그때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1월 27일 전국택배노동조합 사회적 총파업 선전물을 우편함 곳곳에 넣어두고 왔다.

4시간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그나마 스스로 알고자 하는 노력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택배 노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어깨나 팔, 허리 등이 아프신 분들이 많다. 근육이 다시 좋아지려면 최소한 1달~3달 정도는 쉬어주어야 하는데 휴가를 쓸 수 없어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한다. 사측에서는 쉬려면 본인의 물량을 팀에서 분배하여 소화하라고 하는데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퇴사도 할 수 없는 것이 업계 현실이다. 한 번 나가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체국 집배원은 우정직 공무원이지만 택배는 민영 택배사와 마찬가지로 모두 개인 사업자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개인사업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퇴사라는 말을 동시에 하시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래서 '개인사업자라고 하시면서 퇴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네요?'라고 되물었더니 웃으시면서 '그래서 잘못됐다는 겁니다.'라고 답하시더라. 플랫폼 노동자의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그대로 그 한마디에 드러나는 듯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바뀐 건 크게 없다고 하셨다. 우체국은 예전부터 사측과도 많이 싸워왔다. 노조를 만들고 나서 싸울 때는 예전에 비해 힘은 받는 듯 하지만 획기적으로 크게 바뀐 건 없어서 크게 바뀌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만큼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뜻이겠지.


의료ㆍ보건 노동자뿐 아니라 택배노동자가 있었기에 이 나라 방역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하게 택배가 쌓여있는 탑차 내부를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택배노동자는 단연코 K-방역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배송 중인 택배 탑차 모습(배송 중일 때는 택배 탑차 문이나 운전자석 창문을 열어놔야 딱지를 안 뗀다고 한다.)


하루빨리 마땅한 대우를 받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살기 위해 파업하는 택배노동자를 응원한다.

살기 위해 파업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대들과 연대한다!

누구도 일터에서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파업응원 시민행동 "살기 위해 파업 중인 택배노동자를 위한 응원의 한마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2020년 이전까지 택배노동자의 사망자 수 통계가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노동조합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성과급도, 승진도 아닌 노동자의 울타리이자 스피커가 되어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숨은 노동', '가리어진 노동'에 관심 가져 주지 않을 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용기를 내주신 택배 노조에 경의를 표한다.


20대를 지나다 보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저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곳들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투쟁현장에 찾아가는 일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투쟁하는 사업장이 있다는 건 누군가 고통받고 있었거나 누군가 또 죽었다는 사실과도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아닐까?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아닐까?

누가 얼마나 아픈지, 네가 나보다 더 아픈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서로 힘들고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뿐.


고통은 고통일 뿐.

조금 덜 아프다고 아프지 않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서로 아픈 곳이 어딘지 찬찬히 돌봐주고 함께 비를 맞아 줄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나의 권리가 소중하듯이 다른 누군가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일.

나의 삶이 소중하듯 다른 누군가의 삶과 인생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일.


나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위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 자신의 불편함은 잠시 참을 수 있는 일.


서로가 서로의 삶에서 비빌 언덕 하나쯤이 되어 주는 일.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

1월 27일 전국택배노동조합 사회적 총파업 선전물

#잠시_멈춰도_괜찮아

#살기 위한 파업_응원합니다

#택배노동자를_살립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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