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기술

여백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으며

by 김하종

화면은 반딧불처럼 깜빡이고

손끝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한 줌 불꽃이 잇달아 터져도

눈동자는 늘 낮인데, 가슴은 아직 새벽녘.


말은 얇아져 자막 길이만큼 남고,

웃음은 이모티콘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우리는 서로의 주소를 알아도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먼저 보낸다.

현관 앞 시간은 이제 비어 있다.


늦은 밤, 베갯머리에

작은 세상 하나가 깨어 있다.

푸른 유리가 눈 속을 문지르고,

엄지는 메트로놈처럼 끝없는 물결을 넘긴다.

얕은 바다 위에 깊은 잠은 밀려난다.


오늘은 속도를 바꾸는 실험을 한다.

알림을 잠그고, 화면을 엎어 둔다.

물은 작은 산처럼 조용히 끓고,

찻잎은 천천히 펴진다.


책장은 첫 페이지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틈에서 더 잘 열린다.

여백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으며

여백 위에 연필로 작은 다리를 놓는다.

너의 오늘과 나의 어제가 건너온다.


직선 대신, 강처럼 걸어 보자.

발끝이 서로의 그림자를 가볍게 덮고,

질문은 주머니 속 씨앗으로 남겨 두자.


이것이 오래된 공학이다.

귀 기울이는 법,

옆사람의 보폭에 맞추는 법.


세상이 재촉해도

우리는 서둘지 않는다.

짧은 폭죽 대신 오래 가는 불씨를,

서로의 곁에서 함께 지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