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종 Nov 04. 2020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2019.11.18)

그럼에도, 수고한 이 땅의 수험생들을 위해 울부짖는 노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11월 둘째주 목요일, 그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반 평균 80점을 달성하는 것보다

당신 아들 100점 맞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입시전쟁서 쓰러진 친구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 저 빛나는 상아탑에

깃발을 꽂으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김남주와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보다

EBS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이 더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불의와 부조리에는 눈 감고 귀막아

굴종과 침묵 속에서 오로지

공부나 하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군 복무하면서, 가난 속에서도

수능만점의 신화를 써 내는 모습을

쏟아내는 언론사의 보도는


망가진 입시제도와 노동시장의 황폐화를

만들어 낸 기성세대의 반성따위는 없을테니

반드시 너는 홀로 살아남으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열 아홉과 스물의 경계에서

단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모든 것이 바뀔거란 기대에 꿈을 포기했지만


새내기가 되어서도 꿈을 쫓기는 커녕

정작 만18세 투표권 하나 없어 교육감조차

내 손으로 뽑지 못하는 신세였다는 것을.


학종이니 정시확대니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세상사람들의 달콤한 말을 삼켜내지 못하고

고귀한 상아탑 앞으로 가 토해내련다.


대학이라길래 참 큰 걸 가르쳐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 크나큰 학교는 우리에게

인간의 파편화와 무기력만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도

우리는 스스로 깨우쳐

비로소 큰 학생이 되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내 동무 손 꼭 잡고

우리는 아직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학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