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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Nov 04. 2020

고개숙인 者(2020.1.9.)

어느 겨울밤, 평화의 소녀상 앞에 무릎꿇은 한 사내를 바라보며

부슬부슬 겨울비 내리는 그 계절

개탄의 거리 한복판에 서서

비겁과 용서를 잇는 평화의 성물 앞에

고개를 숙인 한 사내를 보았다.


고요 속의 우성(雨聲)은 침묵을 강요했고

암흑 속의 절애(絶崖)는 단념을 가르쳤다

그치는 법을 잊은 눈물 끝에 매달린 추는

철퇴가 되어 그를 끝내 무릎 꿇리었다


간절함인지 미안함일지도 모를

그의 몸부림은 쉴 틈이 없다

아스팔트에 바짝 뉘인 몸뚱아리는

한없이 낮아져 그대를 높인다


고개 숙여야 할 저 놈들의

뻣뻣한 모가지를 부러뜨려

굳게 다문 당신의 두 손을 녹일

투쟁의 모닥불을 마저 지피리


-


그렁그렁한 두 눈을 바라보던 남녀는

잠시 놓았던 서로를 부여잡고


저만치서 저만치서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고개 속인 평화로

저 한 가운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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