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밤, 평화의 소녀상 앞에 무릎꿇은 한 사내를 바라보며
부슬부슬 겨울비 내리는 그 계절
개탄의 거리 한복판에 서서
비겁과 용서를 잇는 평화의 성물 앞에
고개를 숙인 한 사내를 보았다.
고요 속의 우성(雨聲)은 침묵을 강요했고
암흑 속의 절애(絶崖)는 단념을 가르쳤다
그치는 법을 잊은 눈물 끝에 매달린 추는
철퇴가 되어 그를 끝내 무릎 꿇리었다
간절함인지 미안함일지도 모를
그의 몸부림은 쉴 틈이 없다
아스팔트에 바짝 뉘인 몸뚱아리는
한없이 낮아져 그대를 높인다
고개 숙여야 할 저 놈들의
뻣뻣한 모가지를 부러뜨려
굳게 다문 당신의 두 손을 녹일
투쟁의 모닥불을 마저 지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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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그렁한 두 눈을 바라보던 남녀는
잠시 놓았던 서로를 부여잡고
저만치서 저만치서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고개 속인 평화로
저 한 가운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