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에게
검게 그을린 옥상 위에
작은 천막 하나, 깃발 하나,
이불 두 개가 놓여 있다.
왜 이런 곳까지 올라와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늦은 바람처럼,
그늘진 철 구조물 사이로 스며든다.
아침마다 기계 소리가 먼저 인사하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농담과 한숨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따라 흘러가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불이 났다.
탄 것은 공장 설비였지만
꺼져 버린 것은 사람들의 자리였다.
오랜 시간 쌓인 이름들이
순식간에 줄을 서서 지워졌다.
지상에서 갈 수 있는 길이
하나씩 닫혀 갈 때
남은 통로는
하늘로 난 계단뿐이었다.
그래서 옥상으로 올라왔다.
불에 그을린 철근 옆,
플라스틱 의자 둘.
여름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프라이팬처럼 달궈져
발바닥이 열기로 달궈지고,
겨울에는 바람이
텐트 지퍼 사이로 칼날처럼 밀려 들어와
이불 속 깊은 뼈마디까지 더듬어 보았다.
몸이 먼저
농성의 언어를 익혀 갔다.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는 밤마다
여기서 내려가는 순간
싸움도 같이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입 안에서 가장 쓴 약처럼 천천히 녹았다.
재무제표에는
한 사람의 하루가 적혀 있지 않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
잠든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는 그 순간,
그 손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이곳의 600일을 버티게 했다.
싸움의 공간은
법정이 아니라 옥상이 되었다.
높은 곳, 바람이 더 세게 부는 자리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몸으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물었다.
왜 저런 곳까지 올라가야 하느냐고.
숨으려고 오른 것이 아니다.
모두가 보게 하려고,
모른 척 지나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이 높이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지상에서는
설명 몇 줄에 묻혀 버릴 수 있는 일이
옥상에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의 형체가 되었다.
불타 없어진 공장의 속살과
이 나라 법과 제도의 빈틈,
외국 자본이 남긴 그늘이
하늘과 맞닿은 이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이
먼 별처럼 깜빡이는 사이,
옥상 위 작은 등이
한 점 흔들리는 빛으로 켜져 있었다.
이 싸움이
세상의 질서를 모두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
창밖을 올려다본 누군가의 가슴 한켠을
잠시 뜨끔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짧은 순간이
다음 싸움의 첫 걸음이 되기를,
당신도 언젠가
자기 자리에서 멈춰 서게 만들기를
조용히 바랐다.
476일째 되는 날,
이빨이 쑤시고, 속이 뒤집히고,
어지러움이 온몸을 덮칠 때
버티는 것만이
항상 이기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눈물 섞인 한숨으로 배워야 했다.
남은 이가
둘의 이름을 함께 안고
옥상 위 시간을 계속 이어 갔다.
하루하루 날짜가 차례로 찍혀 나가는 동안
몸에는 하루하루
무게가 더해갔다.
600일째 되는 날,
다시 땅을 밟았다.
사다리를 내려오며
허벅지가 떨려
한 칸 한 칸이
또 다른 고공처럼 느껴졌다.
이긴 것인지, 진 것인지
누군가는 단순한 말로 묻고 싶어 했지만
그 물음은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지켜 내지 못한 것들과
끝내 꺾이지 않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목까지 차올라
기침처럼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옥상 위에서는 패배처럼 보였던 시간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는
조용한 승리로 남기를 바랐다.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는 기록보다
어디에도 없던 용기의 모양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지금 불탄 옥상에는
사람 대신 잡초가 자라고
그을린 벽에는
희미하게 남은 글씨 자국이 있다.
우리는 여기 있었다.
짧지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문장은 이제
천막 위 현수막이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
보이지 않는 자막처럼 떠다닌다.
누군가의 600일이
우리의 하루를
조금 덜 무심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옥상에서 버틴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언젠가 조용히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가끔 희미하게 떠오르는 옥상의 풍경을 떠올리며
다짐하듯 중얼거려 본다.
사람이 왜
거기까지 올라가야 했는지
잊지 않겠다고,
불탄 옥상 위에서
누군가의 삶이
참 귀한 얼굴로
오래 서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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