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모양

사람을 함부로 못 하게 하는 것

by 김하종


정의는 멀리 있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주 가까운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쓰러질 때 그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문고리까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트는 일.

그 모양을, 한 편의 시로 더듬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말은

대단한 꿈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하루를

무사히 건너게 해 주는

낮은 바닥 같은 것


그 바닥이 얇아지면

누군가는 더 빨리 뛰고

누군가는 더 조용해진다

조용해진 쪽이

먼저 사라진다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보았다



불평등은

돈의 차이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거리의 차이



어떤 목소리는

문고리에 곧장 닿고

어떤 목소리는

복도 끝에서

자기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누자고 말한다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락이 일상이 되지 않게

넘어졌을 때

몸이 먼저 닿을

바닥을 더 두툼하게 하자고


그 말이 누군가에겐

어렵다.


나눔이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주머니를 더듬는 손처럼 느껴져

내가 버텨온 흔적이

지워질까 두려워서 그렇다.


나는 그 두려움을

쉽게 욕하지 못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밤이면

괜히 마음부터 잠그기 마련이니까


다만 묻고 싶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건

나눔이 아니라

믿음이 새어 나가게 만든 틈들이 아닌지

서로의 눈을 먼저 흐리게 한

탁한 유리들이 아닌지


정의는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못 하게 하는 장치

약한 쪽이 매번

자기 고통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작고 단단한 규칙


그래서 나는

더 많이 가지는 꿈보다

덜 무서운 하루를 꿈꾼다

누구의 삶도

한 번의 추락으로

설명되지 않도록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덮이지 않도록



서로의 손이

함부로 향하는 순간

그 손목을 붙잡는

작고 단단한 장치

그게 내가 믿는

정의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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