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과 사랑

집밥 좋아하시나요?

지금 먹고 있는 이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by 김하종
집밥

[명사]
집에서 지은 밥. 또는 집에서 끼니로 먹는 밥.


집밥이란 흔히 집에서 만든 밥, 가정식으로 잘 차려진 식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요리를 백종원 아저씨만큼 잘한다고 해서

혼자 자취방에 홀로 남아

5첩 반상을 멋들어지게 차려먹는다고한들

그것을 정녕 집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아들이 고기를 잘 구워도 손수 구워 먹이시고 싶은 마음.

메밀국수 말아먹을 때 열무김치 하나라도 더 얹어 주려는 그 손길.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무리 작은 음식이라도 옹기종기 나눠먹는 온정.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


"오메가 3랑 아연은 꼭 먹어야 한다."

"비타민B랑 홍삼은 챙겨 먹니?"


"임용고시는 대체 언제 볼래?"


잔소리인 듯 잔소리 아닌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들.


요것들이 빠지면 집밥이라 할 수 없겠지요.

집밥이 그립다는 말은

그때 그 손길이, 가족의 품이, 그 따스함이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그립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서로 웃는 얼굴 보듬으며 함께 먹는

바로 그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집밥입니다.


그것이 빵 한 쪼가리, 우유 한 컵, 달걀 한 알일지라도.

식구(食口)

[명사]
1.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2.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언젠가부터

한 식구가 된다는 말은

어렵고 그리운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같이 밥 한 번 먹는 것조차 불안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5인 미만 집합 금지가 풀릴 때까지 상견례마저도 기약이 없는 사회입니다.


웨딩드레스를 맞추고 식장까지 잡아놔도

한 순간에 결혼이 미뤄지거나

친지들만 모시고 온라인 결혼식으로 대체하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설날에는 직계가족조차

5명 이상 모이지 못한다니

코로나 19는 이 사회의 참 많은 것을 깨부수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물론 나쁜 것들만 있지는 않습니다.

지난 100여 년 넘는 기간 동안 너무도 공고했던

적폐 문화들이 가정, 학교, 회사, 사회 곳곳에서

균열이 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회의는 회식을 하기 위한 구실이었던

우리 조직 안에서,

회의 끝나고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이

이토록 간절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회적, 물리적 거리두기도

연결된 사람들의 고리까지 끊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와중에도 새로운 길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더

다시 이어질 방법을 간절하게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랜선 뒤풀이를 하는 모습이 제법 낯설지 않게 되었고

화면 너머로 듣는 수업이 매우 익숙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함께 나누었던 눈빛이 그립습니다.

서로를 바삐 오가던 재잘재잘 말소리가 그립습니다.


그렇게

식구들과 동지들과

마주 보며 함께 나눠 먹던

집밥이 그립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임금님 수라상 같은 밥상이 아닙니다.


밥과 찌개가 아무리 차갑게 식어도

식을 줄을 모르던 사람의 온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밥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밥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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