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갑지 못한 손녀의 진심이 할머니에게 닿았으면.
나에게는 90이 넘으신 성격이 화끈한 할머니가 있었다.
화도 잘 내셨지만 때로는 소녀처럼 웃으시던 할머니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누워만 계셔야 했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오더니 건강이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몸을 일으키시지도, 뭘 드시지도 못해서 그냥 그렇게 하얀 침대에서 몇 년을 보내셨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이 왔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아픈 것보다는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가 정말로 좋은 곳으로 가버리셨다. 장례식장에 있어야 하니 아르바이트 사장님께 미리 전화를 하고 밀린 빨래를 돌렸다. '졸업작품 마감이 코앞인데 어쩌지..'하고 내 걱정부터 했다.
나는 할머니랑 친한 손녀는 아니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한테 얌전히 안 있는다고 혼나고, 학원이라도 다니면 아빠 피빨아 먹는다고 구박을 받고는 했다. 손자들은 뭐라고 안 하시면서 손녀인 나랑 우리 동생만 뭐라고 하는 할머니가 밉고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커질수록 작아지는 할머니를 보며, 난 할머니를 이해하고 할머니께 감사했다. 연세가 많으셨던 할머니가 남아선호사상이 아예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 고생하는 아빠가 딱해서 여자애가 공부해서 뭐 하냐고는 하셨지만, 그럼에도 내가 고집부려 유학을 갔을 때 도움을 주셨던 것도 할머니였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손녀인 나를 사랑하셨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할머니가 매번 먹으라고 쥐여주던 과자들, 춥다며 전기장판 쪽으로 오라는 손짓들을 모두 기억한다. 나도 실은 그런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살갑지 못한 손녀의 진심이 할머니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돈 많이 벌어서 잘 해 드리고 싶었는데 못해드려 죄송하다고. 그곳에서는 맛있는 거 많이 먹어도 배도 안 아프고, 아주 건강하게 친구들이랑 고스톱도 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서 정말 다행이다.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예쁠테니까.
할머니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