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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Feb 08. 2022

할머니가 내게 남겨준 조각들

여자라서, 글을 몰라서 무시당하던 세상에서 할머니가 스스로를 지키던 방법


할머니의 장례식은 3 내내 날씨가 시원하리만큼 파란 하늘을 보이며 화창했다.

"할마씨, 자기 죽는 날엔 오는 비도 그칠 거라 하더만은  말이  맞네."

고모는 나이 90 넘어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라 하시면서도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욕심 많던 할매가 죽을 때까지도 자식들 편하라고 날씨 좋은 날 돌아가셨다는 고모의 말처럼,

할아버지 산소 옆에 할머니를 모시는 동안에도 산공기가 차가우면서도 맑고 시원했다.


우리 할머니는 험한 시장통에서도 자기 장사를 하시며 여장부 살아오신 분이셨다.

억척스럽게 일궈온 돈으로 자기가 지은 건물에 자식들을 거느리고 사시던 할머니였다.

돈 욕심, 자식 욕심 많다는 평가를 받고는 했지만, 그 많은 자식들의 손주까지 챙기시던 능력자 셨다.


우리집도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할머니집 가까운 곳에서 살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의 강단 있는 모습과 센 말투가 무섭기만 했다.


"구부정하게 다니지말고 어깨피고 다니거라."

할머니가 내 등짝을 자주 때리며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러웠는데.


나이가 들고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되면서 그 말이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여자라서, 글을 몰라서 무시당하던 세상에서 할머니가 스스로를 지키던 방법 나에게 알려주신 거라는걸.


아빠 고생시킨다고 공부하지 말라던 할머니는 후에 유학비도 지원해 주시며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그래, 여자애도 똑똑해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하거라."

그렇게 한글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는 90이 되어 치매에 걸리기 직전까지도 일기를 쓰고 공부를 놓지 않으셨다.


할머니에게 좀 더 많은 걸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할머니의 지혜를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가 있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고, 할머니의 일부는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지만, 할머니가 내게 남겨준 기억의 조각, 삶의 조각들은 생생히 살아있을 것이다.


정신이 사라지기 전까지도 늘 예쁘게 염색하고 화장을 하고 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한테 감사하다고 편지 한 통 써드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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