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를 잘하고자 사람에 대한 필터를 40대가 되어 장착해 본다.
헛소리다.
다소 냉소적일 수도 있는 내 자아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첫 글을 쓴다. 냉소 파트는 내 삶에서 분리하여 평소에는 좋은 생각만 하고 살고 싶다. 이 브런치 북은 이런 나의 마음이 녹아있는, 녹아있을 시리즈다. 늘 웃는 모습 뒤에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을 내 지인도 잘 알았으면 좋겠다. 나뿐 아니라, 힘들어도 남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은 남을 위해 웃어주는 사람을 대신하여 쓴다는, 나름의 사명감도 있다. 인생 대부분을 스마일맨으로 살아온 사람이 세상 시니컬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혹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담겨 있다.
정말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오다가다 사람 생각나서 보는 사람이 있었다. 뭔가가 필요해서도 아니고, 뭘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보고 싶다
는 마음 하나였다.
보통 연인과의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치기 어린 시절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 말고는 순수한 마음의 만남은 거의 없다. 심지어 치기 어린 시절도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이다. 가끔 대학생조차 순수함 외 목적 있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수는 많지 않다. 대다수는 대학교 시절까지는 순수한 시절에 넣어도 되겠다. 만남의 목적은 대부분 비즈니스 관계로 변질된다. 혈연, 지연과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오랜 말이 있다. 사실, 속담도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 여건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관계를 '변질'이라는 단어로 속단하지 않으려면 서로 간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예의는 계약서다. 계약서의 형식은 중요치 않다. 자필, 날짜, 지문도장이면 공증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되니, 무조건 쓰기 바란다. 비누로 인주를 씻어내는 것 외엔 딱히 힘이 들지 않는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보고 싶다는 헛소리는 믿지 말고, 계약서를 믿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이 있던 시절 함께한 사람과의 추억을 사업하며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계약서가 필요하다. 나는 오랜 지인의 말만 믿다가 10억 이상 손해 봤다. 나에겐 10억짜리 교훈이다. 오랜 지인이 뭔가 하자며 이야기할 때 계약서를 말하기 껄끄럽다면, 출판할 책에 작가로 넣어 주는지, 대회에 이름을 올려주는지, 특허 이름 등재 여부 등 계약서와 비슷한 잡다한 서류에 이름을 올려주는지(등재) 보면 된다. 하지만 지내보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이고 자신을 믿으라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생활 문화 자체가 계약서를 강력하게 주장하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자들은 그만한 능력도 없는데 계약서도 없이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으니 얼마나 달콤한 선택인가? 이런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의 말은 라면 끓이고 최종적으로 남는 검은색 찌꺼기 같은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목적이 아닌 비즈니스적 내용이 있는지 지인과의 만남에서 끊임없이 확실해야 한다. 비즈니스 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비즈니스 관계다. 서류나 이름은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한다. 그 사람 말은 신뢰할 수 있다? 언론에 드러난 사람도 사기를 치는 세상에, 인터넷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몇 번 믿다가는 나중에 한 번에 모든 것을 잃는다. 직장도 돈도 가족도 사랑도 미래도. 내가 직접 경험했다.
서울대에 가려고 여러 번 도전했는데 실패한 경우. 또 대기업에 여러 번 도전했는데 실패한 경우 동경이 생기고, 자신의 철학에 대한 옹고집이 생긴다. 대기업에 있는 지인을 데려오고 싶어진다. 자신은 유명하지 않는데, 잘 나가는 지인을 무보수나 싼 값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이런 결핍에 대한
동경
이 작용한다. 그리고 비즈니스 관점에도 유사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이력서에는 학력과 경력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상 자기소개서는 대부분 살펴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라고 크게 다를까? 장관 후보자 받는다고 해서 여기저기 추천을 받는다. 지인 네트워크로 형성되는 대한민국이다. 이유는 모두 똑같다.
검증이 잘 되었다.
단순히 말해서 헛소리다. 정부 이사하는데 수백억은 쓰면서 사람 하나 검증하는 검증 시스템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창의성, 성실성, 혁신성, 청렴성,... 등등 바로바로 생각날 만한 상식적인 단어만 적용해서 수치화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 좁은 하늘을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길들여지듯. 한국 사회는 네트워크 추천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수많은 추천서가 조작되지 않았는가?
나는 지인들이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인간관계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세속적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개처럼 부리기는 힘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부고발 이력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 대표나 혹은 자신이 대표라고 착각하는 대부분의 팀장은 반기를 드는 사람을 싫어한다. 쓴 소리나 좋은 방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따져보면 그리 멀리도 않은 조선시대 폭군에 빙의해서 옳은 말 하는 충신에게 칼 춤을 추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딱히 다를 게 없다. 옳은 말을 해서 불이익을 받더라도 딱히 응원해 줄 사람은 없기에 사회는 그렇게 굴러간다.
그럼에도 나를 찾는 사람은 딱 2 부류다.
좋은 방향을 찾고 싶거나 내가 이룬 것들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처럼 잠시 부풀리고 싶을 때 그렇다. 나는 그런 3류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력서를 보는 관점은 좀 다르다. 우선, 학교가 좋으면 학창 시절 부모님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학창 시절 딱히 뭔가 도전하거나 하진 않았구나라는 판단도 함께한다. 그래서 자소서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개인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을 찾는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도권 안에 있으면 취업이 보장될 거라 믿었는데 그러지 않을 줄도 모르고 그냥 그대로 믿어 왔는지. 혹은, 본인이 충분히 사색하고 그 길을 걸어왔는지가 궁금해진다. 왜냐면 함께 가려는 신념이 있는지 없는지가 학교를 벗어난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약서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사람이다. 혼자서는 큰 일을 할 수 없고, 멋진 팀은 개인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눈으로는 제대로 된 팀을 만들 수 없다. 보통 업력도 10년 이상, 함께 일하는 사람도 10년 이상이라면 그 회사는 내가 회사를 접더라도 그냥 가고 싶은 회사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5년도 대단하다는 것을 넘어 "엄청난" 것이다. 사업은 그 정도로 어렵다.
결핍에 대한 동경은 3 부류가 있다. 물론, 3 부류도 결핍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눈 다음 2 부류로 나눌 수 있기에 모든 분류는 이진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해서 3 부류라고 말하면, 결핍이 있는 사람. 결핍이 있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 주장을 배운 사람. 그리고 결핍이 없는 사람이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T(논리우선) 보다 F(감정우선) 일 확률이 매우 높다. 세상의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상황이던 나쁜 상황이던 본인의 이익보다는 서로 간의 감정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내 편협한 경험으로만 판단하고 주장해 본다면, F가 T 보다 실수가 잦고 손해를 많이 끼친다. 나는 눈물 많은 F였다. 그러다 결핍이 있고 끊임없이 이 결핍에 대해서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을 수십 년 만난 후 T가 되었다.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평가하기 싫지만, 남을 그렇게 평가하는 누군가는 쓰레기라고. TV에 나오는 교수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혹은 대단한 상을 받지도 못하고 대중화된 책을 쓰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지식 몇 개 가지고 남을 평가하고 남의 인생을 재단하고 마치 그것이 세상의 진리인양 설파한다. 그런 사람에게 빈센트 반고흐는 어떤 사람인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이순신에 대해 평가해 보라고 하면 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네트워크 한국 사회에서의 평판 위협에 대응하는 반응이다. 공격하기 쉬운 약자만 골라서 공격하며, 추가 범죄 같은 것은 예측하지 못해서 수많은 사상자가 다시 발생한다. 교수의 제1 덕목은 겸손이다. 내가 뵈었던 교수님은 교수직 하면서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셨고, 심지어 학생에게도 배우려고 했다. 이런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교수라는 타이틀을 다 같은 타이틀로 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쓸데없이 '찐'이란 말이 필요해진다.
찐 교수님
은 따로 있다. 인공지능 사회라 이제 교수의 말도 걸러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인공지능은 교수진에서 가장 많이 쓰는 툴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해당 타이틀에 있는 사람은 자아성찰 기능은 기본으로 탑재해 있다. 그것이 혁신을 가로막는 눈가리개가 되기도 하지만, 한국은 참 타이틀의 나라다. 타이틀은 통계적으로 맞아서 따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작은 확률로 로또에 당첨되고, 벼락 맞고, 싱크홀에 빠지고 사업하다 큰 변을 당하는 것처럼 최상의 리스크 관리를 하려면, 이런 타이틀을 넘어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뭘 대단한 것을 하려고 사람 말 믿고 이것저것 해 본 게 아니다. 그냥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원했다. 그러나 타이틀도 일류 타이틀 아니고 비루한 타이틀 믿고 사람 보다가 삶의 질이 몇 단계를 하락했다. 심지어 죽음도 생각했었다. 아마 나뿐 아닐 것이다. 타이타닉 탐사정 믿고 3억을 지불했던 부자들도 프린스턴대 출신 및 다른 사람의 타이틀을 믿고 본인의 생명을 맡겼을 것이다. 죽고 싶으면 타이틀만 봐도 된다. 그 반대면, 이런 주장과 논리를 보고 참고해서 본인의 생각으로 살면 된다.
계약서 외 사람에 대해 말한 내용으로 좀 더 쉽게 사람 거르는 방법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다. 내 지인과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겠다. T라는 내가 아끼는 지인이 있다. 그 지인은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 IT 관련해서 모르는 것도 물어봐 준다. 그러다 나와 내 가족이 큰일이 있을 때 해당 일 관련해서 전화를 자주 해 준다. 돈은 별로 많지 않은 지인이다. 그냥 딱 자기 먹고 살 정도다. 그러나 그 걱정이 진심이라는 것이 정말 느껴진다. 좋은 일 있으면 또 축하해 준다. 혈연 관계도 아니다. 다들 이런 지인이 1명 이상은 있을 것이다. 이분은 운전을 많이 한다. 그러나 운전 중 나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있다면 내가 운전 중인지 모르고 연락했는데 지인이 받은 경우다. 이 분이라면 난 언제든 차를 타며 연락해도 난 받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없다. 영업직에 있거나 중요한 일이라면 운전하면서도 전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당연하지는 않다. 운전이라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만약 불의의 사망 사고가 난 경우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수긍하겠다. 사실 그 정도 능력이면 이미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천재성이 나왔을 것이다. 말은 영어로 하면서 동시에 한국어로 편지를 쓴다던지 하는. 혹은 특정 영역에서 대단한 천재일 것이고, 이미 수많은 세계의 난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또, 기본적으로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에게 평판 위협이 될 교수님께 전화하면서 운전 중 통화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한테 전화할 때는 늘 운전 중이다?
자식을 둔 부모가 아니라면 그 인간관계는 사실상 정리해도 인생에 큰 무리 없다. -자식은 전화를 잘 안 하니 운전 중 전화해줘도 고마울 걱이다.- 당장 정리가 힘들다면 시간을 두고 정리해도 괜찮다. 방법은 쉽다. 본인도 그 사람에게는 운전할 때만 전화하면 된다. 당사자가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에 태도를 고치던지, 관계는 소원해질 것이다.
또 한 가지 쉬운 사람 필터링 방법을 공유한다. 약속도 없이 당일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운전 중 통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가족도, 30년 지기 친구도, 엄청나게 도움 되는 정보나 소식, 갑자기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니고. 그냥 사는 것이 궁금해서? 그렇다면 집 앞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나보다 잘 살면 안 되는데, 사회적 우리에 갇혀 지내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요약해서 듣고 싶은 이유다. 난 최근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술자리였다. 그러나 통풍 때문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나갔다. 2차를 이자카야 집으로 가자고 했고 혼자서 안주 50만 원어치 먹고 나왔다. 횟집도 아닌 곳에서 바닷가 횟집만큼의 회를 먹었고 먹으면서도 화장실을 몇 번 갈 정도로 먹었다. 카톡으로 이래저래 안부를 묻고 마무리를 했지만, 난 알고 있다. 다시는 이렇게 부르지 않을 것을.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미안한 마음도 없다. 다음 모임 때는 더 노력해서 100만 원어치 안주를 먹고 그냥 택시 타고 가며 다음에 보자고 할 것이다. 직설적인 나는 불만을 이야기했다. 왜 술자리에만 부르고, 왜 당일해만 부르고 술을 마시면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항상 이야기하냐며. 젊은 시절 항상 내가 술값을 내는 친구였는데, 최근 꽤 성공하며 만날 때마다 술 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말하는 친구 이야기다. 물론, 내가 술 마실 땐 사람 좋아 날이 샐 때까지 마셔서 몇 백만 원씩 썼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친구라면 그냥 편의점에서 깡소주 한 병 나눠 마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똑똑해서 경험하지 않고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술자리가 꼭 모든 것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담보는 계약서에 담긴 담보가 진정으로 담보한다.
최근 결혼한다고 인사 온 제자가 있었다. 술 마시자고 했었는데 이래저래 상황 들어 보니 술 마실 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도 많았기에 커피숖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에 깃들어 있는 허풍과 허례허식 이제 정말 사라졌으면 한다. 내 지인들아 돈 많이 벌었으면 나에게 안 써도 되니 기부를 하던지 일자리를 창출해서 한국 경제를 돌렸으면 한다. 돈 자랑 보다 본인이 먹여 살리는 사회적 식구가 몇 명인지로 자랑을 하면 기꺼이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겠다.
내가 비즈니스를 하며, 필요한 부분이 있어 정리를 했다. "지니 가는 길에 들렀어" 하는 지인의 의도가 비즈니스면 결국, 비즈니스 관계가 된 것이다. 만나서 안부 근황 등 대화 주제가
easy talk
하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바로 비즈니스 이야기만 하다가 비즈니스 이야기로 끝난다? 내 비즈니스에 give&take 가 될 것이 아니라면, 굳이 만날 필요 없다. 관련 내용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지나가는 길에 들르는 경우는 항상 당일 혹은 전 날에 연락이 온다. 술자리와 마찬가지다.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그냥 지인은 보기 힘들다. 정말 좋아해서 비즈니스로 관계를 묶는 경우도 있다. 지인회사, 가족회사도 아마 그런 부류의 하나일 것이다. 신뢰 문제가 더 크긴 하겠지만. 겸사겸사 비즈니스로 묶어서 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런 경우 못 만나게 된다면,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겨 두라고 하고 싶다. 그런 경우 그 시간이 20년이 지나도 또 좋게 만날 수 있어서 그렇다. 아마 비즈니스 관계고 사업이 잘 안 되었으면 오히려 평생 보지 않고, 가까이 있어도 만나기 싫을 것이다.
더 이상 순수함도 찐 조언자도, 관계에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도 없는 시대다. 그래 매우 드물게, 극소수가 있다고 하자. 알코올도수 0%가 아니어도 0%라고 표기하지만 내 글에서 만큼은 그러지 말아 보자. 하고 해보려고 해도 고슴도치 가시처럼. 그 가시의 개수만큼 이용당하며 살아온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결국 타인은 지옥이며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비화를 출판했었던 것이다.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바뀐 생각은 없으나 몇 가지 추가되었다.
1.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면, 웬만하면 덮어두고 가자는 것
2. 비즈니스 관계를 내가 만들지는 말자는 것.
3.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상대방이 일자리가 아예 없어 나에게 부탁한 상황)에 거절하지 못했다면, 내가 만든 것이니 해당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개인 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삶은 철저히 분리를 해야 한다. 나는 오랜 기간 연구개발직으로 그런 구분이 잘 안 되는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구분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전체 내용 세 줄 요약하면,
1. 지인과의 비즈니스 관계는 최소한으로 만들자.
2.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페이퍼 작업을 꼭 하자.(자필 계약 + 날짜 + 지문도장)
3. 사람을 보는 필터를 다양화하자
정도겠다. 나를 현명한 조언자로 포지셔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비루하고 짧은 경험에서 더 이상 절벽에 있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또, 내가 누군가에게는 전해주고 싶은 글이다. 당일 보고 싶다고 연락하지도 말고, 운전하면서 연락하지도 말고, 말보다는 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력은 해 보지만, 어차피 사람은 잘 안 변하는 것도 알다 보니 글과 함께 아쉬움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