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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H Jun 02. 2021

[소설] 100조 원의 사나이_16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백 대표와 함께 거래소 사업까지 오면서 난 그저 기술이 좋았을 뿐이었다. 기술 구현에 대한 경이로움, 설렘, 기쁨만 보며 앞을 달려왔다. 기술자라 기술만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배를 탄 상황에서 지금 상황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백 대표는 내가 사내 정치하지 않고 모든 기술을 동료들과 나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기술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대표로 있으니 회사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르쳐 준 기술만을 이용해 워라벨 외치며 그 자리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백 대표와 짜 와 다 내보냈다. 그들은 내보내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일부러 큰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고 바쁜 상황을 만들며 백 대표와 친한 회사에 대표가 인력난에 시달릴 때, 사람이 필요한 곳으로 자발적으로 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회사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이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조금 더 알았을 뿐이다. 인간의 본성은 큰 이익에는 이기주의적이고 작은 손실에는 이타적이 된다. 생명 존중에 대한 행동이 뉴스에 크게 보도되는 이유도 그만큼 살신성인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백 대표와 나는 이상치에 대해서 배팅하지 않았다. 정규 분포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값에만 배팅을 했다. 그런데 사람을 직접 죽이지 않지만 그런 상황에 이르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표님, 여기 **대표 집주소입니다."

"그래... 수고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대표님 그리고 제가 생각할 것이 많아서 자리를 좀 비우고 싶습니다."

"그래. 나도 그랬어. 기간 정하지 말고 생각하다가 돌아와. 고 팀장을 믿는다거나 만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을게. 다만, 우리가 한 배를 탄 것임은 서로 잘 알고 있을 거야."

"네... 대표님."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근원적으로 동등할진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것은 분명했다. 아니, 법정에서는 분명히 할 말이 있다. 미필적 고의로도 안 될만한 것이고, 백 대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 왜냐면 백 대표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본인이 입신양명하는 데 있지 않다. 목적 그 자체가 정의구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결말을 뻔히 알고 있다. **대표가 운영하는 거래소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백 대표는 그 사람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집주소를 이 타이밍에 건네주면 분명 뭔가 일을 칠게 뻔하다. 나는 그것이 빤히 보인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경제순환의 구조에 따라 자연적으로 아픈 사람이 생기고 치유되는 것을 지켜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왜냐면 이런 판은 나도 백 대표도 이제 곧 죽을 그 인간도 다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코인판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사실 결말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몰랐다고 해도 조금만 지나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미 인간의 개체가 너무 커져서 인간이 어떤 의지만 담으면 자연이 파괴될 정도이다. 아아... 내가 무너져 단다는 것이 인식된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이기적이고 독단적이고 혼자만 이익 보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모두가 그것을 아는, ** 대표가 살해당하면 사실 수십만 명이 조금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시스템으로 바뀔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가 나서든, 거래소 스스로가 바뀌던, 좀 더 나은 정책들이나 인식들이 나오던지.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은 왜 우리가 나서야 하냐는 것이다. 백 대표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인간관계도 경제력도 완전 바닥을 쳐 본 인물이라, 아마 수백조를 더 번다고 해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인간, 그런 류의 인간들을 처단하지 않는 이상 멈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한 배를 타긴 했지만 백 대표를 멈출 수 있다. 그리고 백 대표는 내가 피해를 입을 만한 기획을 할 수 있는 인물임에도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항상 보이는 정도의 일만 기획했다. 이번 건도 단순히 주소를 알아봐 달라는 것뿐이었고 전화, 문자, 이메일 그 어느 것 하나 없다. 주소도 모나미 153 볼펜에 왼손으로 적어 달라고 했다. 모르겠다. 우선,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나는 이런 호젓한 공간이 좋다. 사람이 없고 고요한 곳에서는 생각이 더 잘 난다. 아까 고민하던 것의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기분은 나름 좋아졌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에게 피해가 갈 것은 전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장군의 경우 본인이 그냥 숙이고 살았으면 대한민국 1%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힘든 길을 선택해서 본인도 죽고 가족들도 힘들게 살게 되었다. 세간의 관심? 응원? 그리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그를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 그렇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은 확실하다. 근대사를 아는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것 같네. 저기 이 풀들도 다 이름이 있겠지만 우린 다 잡초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굳이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백 대표는 내가 지금 돌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시스템을 이미 구축한 것 같네. 사람을 자르려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만큼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내가 잘 도운 결과겠지. 


"띠링, 고 팀장. 혹시, 사색하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퇴직금으로 세금 떼도 100억 되도록 맞춰서 주식 양도하겠네"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백 대표는 나의 분신 같기도 하다. 생각이 이 정도로 같다는 것은 내가 인간다운 고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저에게는 아직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기 기술적으로 도울 일도 많고, 좋은 시스템 만들어서 사람들들에게 도움되는 것을 만들어야죠. 정의 구현하셔야죠. 이왕 온 김에 한 3일 있다가 올라가겠습니다."

"띠링, 고맙네."


백 대표는 성격이 급하진 않은데 일 진행이 참 빠르다. 나도 오랜 기간 이 바닥에 있었던 만큼 늘 데드라인을 커뮤니케이션에 넣으니 백 대표가 일정 잡을 때 예측 가능하도록 한다. 그래... 미리 결론을 내고 사색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정의구현. 생뚱맞은 단어지만 아마 백 대표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아... 요즘 사회는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말 모를 세상이다. 그러나 돈에 있어서는 뻔하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는데 난 데이터만 봐도 그들의 고통이 보인다. 주기적으로 입금되는 금액, 월급 수준, 은행과 연계되어 대출 정보, 신용 정보를 다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코인판에 들어오는 심정과 폭락했을 때 그들의 취하는 행동 데이터를 볼 때 그들의 얼굴 표정까지 다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라는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 다만, 프랑스혁명처럼 단두대로 안 가려면 조용히 사는 것이 맞다. 그런데 백 대표와 나는 너무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이제 브레이크는 없는 것이다. 빌 게이츠처럼 좋은 일 코스프레해서 재산을 지키던지 해야 한다. 세상에는 정부가 보증하는 재산 포기 각서가 없다. 기부한다고 하면서 기부 단체를 만들고 낼 세금을 내지 않는다. 자식에게 안 물려준다고 하지만 언론 약속이야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아! 거래소에 그런 기능을 넣으면 되겠구나. 일정량의 재산을 우리 거래소가 보증하는 코인으로 바꾸고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찾을 수도 없고 정한 날짜가 되면 자동 기부되는. 참, 나도 웃기다. 쉬면서도 아이디어 떠올리고 있으니. 그나저나 저 쪽 낚시터에 여자면 3명 보이네. 3일 정도 남았으니 말이나 걸어봐야겠다.


"여보세요. 어 석팀장 무슨 일이야?"

"석팀장은 야... 너 휴가 받았다며? 언제까지야?"
"잉? 어떻게 알았어?"

"운영 문제 생겨서 이래저래 알아보던 중에 네가 출타 중이란 것을 알고 던져 본거지. 휴가 맞나 보네. 그런데 나한테 문자 한 통 없냐?"

"쉬쉬.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괜찮아 인마. 담배 피우러 지금 옥상이야. 이 새끼는 애인 맞나..."
"나 지금 바쁘니까 좀 있다 전화해."
"야. 끊으면 죽는다."

"아 그래 알았어."

"야 니 엑스 계속 같은 회사 다니게 둘 거야?"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너 백대 표랑 막역한 사이인 거 누가 모르냐."
"백 대표가 이유 없이 사람 자르는 거 봤어? 아무리 엑스라도 일은 기똥차게 잘해"

"어이구... 차인 새끼가 자랑은 아무튼 어디야 나 마치고 그리로 갈 테니까"

"아 왜. 나 생각할 게 있어."

"생각은 무슨. 아무튼 생각 더 잘나게 아드레날린 팍팍 나오게 해 줄 테니까. 너 그거 좋아하잖아. 크큭"

"알았어. 여기 춘천이야 위치 보내 놀게"

"그래. 있다 봐 자기~ 사랑해"

"어. 어..."


사랑은 무슨 어우 내가 미쳤지. 여자에 관한 한 아무런 이성적 판단도 안 되는 나다. 정말 난 구제불능인가. 그렇다고 내 친구들처럼 비서들과 원나잇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만나의 기간을 가지고 설렘과 무관심까지 가는 과정, 모든 시기를 맞이하고 끝을 낸다. 그것도 사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는 그때그때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되기도 하고. 멀티태스킹이 되는 이 능력을 썩히기도 아깝고 그렇다.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만났던 직장 상사라고 하는 새끼들이 죄다 여자 신입 사원 들어오면 업무 평가든 뭐던 입 벌리고 침 흘리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얼굴도 다 썩어 내려앉은 쓰레기 같은 것들이 가정도 있으면서 그 딴짓하는 것을 보면... 나 같은 경우엔 이혼하기라도 했지. 그런 쓰레기들은 이혼도 안 하고 양다리 걸친다. 그런 면에서 난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지 않다고 세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혼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그게 오히려 진심을 지킨 것 같으니.


"어우, 세 분이서 오셨나 봐요?"


뭐 연락처 미리 따 놓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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