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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H Jun 14. 2021

[소설] 100조 원의 사나이_17

오늘은 언제 퇴근하지?


고 팀장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신부장님은 전 날 통보하며 갑자기 연차를 쓰셨고, 김 차장님도 조용하고 박 과장님도 나에게 아무런 일을 주지 않는다. 너무 편하다. 한 달 월급만 1100만 원이 나오는데 너무 일이 없으니 미안할 정도다. SK에서 1억 400이었는데 갑자기 연봉이 2억이 되어서 어리둥절했고, 내가 기대한 연봉에 비해서 월급 실수령액이 얼마 안 되니 또 한 번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이 정도 일이 편한데 월 천 이상이니 정말 최고의 회사인 것 같다. 상반기 입사자 중 15명 다른 면접자가 모두 합격한 것은 아니겠지. 나랑 같이 들어갔던 사람들은 얼굴이 종종 보이는 것 같다. 경력자들이 만드는 딱딱한 분위기에 연락처도 못 받아 기억이 잘 안 난다. 뭐, 어디에 갔던지 다들 잘 살고 있겠지. 나도 지난 직장 신입 동기들하고는 연락하고 지내는데 회사를 옮기면서부터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처음엔 정이 없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살다 보니 각자 원하는 취미가 다르고 개인 사정, 가족 문제, 건강, 꿈이 모두 달라서 거리를 두게 되는 것 같다. 첫 직장은 막 정 붙이고 사람들하고 술 마시고 어울리고 따로 만나며 쌓인 정으로 직장에서 일을 더 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냈던 모든 시간들이 약간 후회도 된다. 그냥 딱 선 긋고 지내던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계산하고 재고 그런 친구들이 자기 외모는 안되면서 회사에서 인기녀에게 꾸준히 대시해서 결혼하고 다들 잘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그런 친구들은 SNS도 하지 않으니 정말 잘 사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을 뿐이다. SNS는 자랑할 때나 본인들이 자기 PR을 할 상황에 처했을 때만 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인터넷 서핑하며 SNS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는 파티션이 꽤나 높아서 남는 시간에 딴짓을 해도 모르고, 사실 서로에게 딱히 관심도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2억이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을까? 사람인이나 잡플래닛을 통해 보는 회사 연봉 정보도 모두 공개는 아니지만 업계 최고 수준임은 확실한 것 같다. 인사과장님과 계약서를 쓸 때 연봉 정보를 공유해도 된다고 했다. 특이한 회사였다. 그런데 억 단위가 되니 괜스레 공유 안 하게 된다. 대기업 다닐 때는 당연히 연봉 이야기 안 하는 것이 문화였다. 가끔 중소기업 다니는 학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다 보면 연봉 이야기가 나오는데 연봉이 작아서 그런지 서로 공유하더라. 그런데 괜히 이야기하면 내가 술을 사야 하는 분위기라서 3년 정도는 이야기하다가 그 뒤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8~9만 원 술 값 나오면 고민하던 게임 아이템을 사지 않은 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누가 돈을 내던지 그냥 어울리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제 술 값도 그냥 내고 싶지는 않다. 뭐, 여자는 좀 예외긴 하다. 여자들은 꾸미는데 돈도 많이 들고 외출하는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으니까. 그리고 다들 내가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여성 앞에서 술 값 계산하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들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고, 또 술 값 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오는 조현진 그 개새끼 빼고... 그 새끼는 배달하면서 중소기업 애들보다는 많이 버는 것을 알고 있는데, 꼭 내가 나가면 모든 술값을 나보고 내라고 분위기를 만든다. 하긴 초등학교 때 매일 괴롭히던 놈이 잘 되어 있으니 배알이 꼴리겠지. 어휴. 진짜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안 변하는 것 같다. 아니 사람은 변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 회사 사람들하고는 조심스럽게 인연을 맺고 싶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연봉에 너무 만족하고, 바쁘기도 하지만 이렇게 윗사람이 빠졌을 때 확실한 여유가 오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는 정말 어디 가나 똑같은 말을 하는데 진짜 내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도 아니고, 월급은 많이 주지만 주식은 하나도 안 주니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 보내면 내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스톡이라도 주면 얼마나 좋겠냐만 경력직 뽑는 이유가 회사가 해당 부분 역량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잘 안다. 회사가 잘 되어서 같은 일 하는 사람 여럿이 필요한 것이면 신입을 뽑아서 교육시키는 편이 회사 충성도도 올리고 비용이 절약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전 회사는 윗 대가리들이 임원이 시키는 일 그때그때 땜빵만 하면 되니 경력자 뽑았다가 내 보내고, 아니면 대부분 외주였다. 그러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제대로 인수인계될 리도 없고, 유지보수나 변화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 리도 없었다. 정직원들도 1년마다 계약하는 계약직처럼 1년 성과가 안 좋으면 바로 내 보내는 시스템이라 부장들끼리 친하지도 않고 오히려 부장이랑 협력 업체랑 더 친했다. 부장 입장에서도 회사 잘리면 갈 곳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였는데, 뭐 노땅들이야 노땅들 사는 방식이 있고 난 꾸준한 자기 계발로 살아가는 무리니 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오케이였다. 여기는 돈을 워낙 많이 주니 그 돈으로 따로 1:1 교습을 받아도 될 정도다. 우선, 영어는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꾸준히 돈을 쓴다. 요즘엔 영어 공부도 무료 교육이 많지만 온라인이라도 유료 코스는 확실히 퀄리티가 다르다. 그리고 찍힌 동영상 강의보다 라이브로 진행되며 질문/답변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가 집중도도 높았다. 이 회사도 언제 힘들어져서 사람 내보낼 논리를 낼지 모르니 직장인 공통분모는 꾸준히 닦아야 할 것 같다. 에혀... 뉴스 정치판은 왜 저렇게 더럽고, 우리 회사가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닌데 코인 관련해서는 무슨 목소리가 저리 많은지.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웹툰이나 봐야겠다. 네이버 웹툰, 다음 웹툰에 돈 계속 내면서 봤는데 최근 프리랜서 친구들이 툰코를 가르쳐 줘서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 광고가 좀 많긴 하지만 유료 만화를 무료로 다 올려두었다. 무슨 포털 사이트들은 추적 시스템 어쩌고 하면서 툰코 같은 사이트를 잡지는 못하나 보다. 하긴 예전엔 영화관에서 영화 촬영해서 불법 공유하고 그랬는데 만화는 더 쉽겠지. 예전엔 직장인 의무감에 웹툰도 퀄리티 높은 것은 일부러 사서 봤는데... 이래나 저래나 최종적으로 작가한테 얼마 가는지도 모르는 시스템 공짜로 보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기부를 하니 60%는 운영비로 쓴다는 기부 단체와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다. 구글이나 애플은 몇 % 떼는지 알기라도 알지. 조회수나 랭킹 좋아요 등은 꾸준히 보여주면서 웹툰 유료 결제수는 안 보여주는 것은 분명 지네들끼리 해 먹으려는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뭐, 나도 불법 저지르면서 논리를 만드는 것인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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