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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H Dec 25. 2024

실패 계획 세우기

독자님들께, 메리크리스마스~ 애독자층이 나이가 있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공개글이라 충격적 표현을 구체적인 고문방법을 빼고, 매우 순화해서 단순하게 썼습니다. 인셉션 영화처럼 생각의 씨앗을 심고 싶습니다. 물론, 독자님께서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따스한 연말 되시길.



1 성공과 실패 

인간으로서 태어난 것 자체가 실패라고 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실패를 경험했다.

인간으로서 태어난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하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성공한 것이다.


2 실패에 대한 추상과 현실

성공과 실패는 결국 관점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온 또 다른 추상적 개념이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사실 실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과는 우리 눈에 보인다. 또 먹으면 맛있고(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지만) 배가 불러진다. 실체 한다. 태양도, 물도, 집도, 옷도...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실체 한다.


추상적 개념을 접하며 어려움을 스트레스와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모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에 보이 것처럼 만드는 것이 작가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체 한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이다. 내가 존재하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라는 것도 실체하고 내 관점에서의 시간은 죽는 순간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실체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죽으면 시간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죽어도 사과는 남아 있다.


3 현실 관념 전환

사람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은 사람이 죽으면 사라진다. 우리가 죽고 또다시 공룡의 시대가 온 다음 다시 우리의 시대가 왔을 때 그때는 시간을 시간이라고 부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 지성이 없을 수도 있고, 매우 고차원적인 관념으로 시간 자체를 중력으로 볼 수도 있다. 물리학의 발전 속도보다 언어의 발전 속도가 더 빨라서 중력처럼 시간도 벗어날 수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있고 그 단어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끝도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것이 글로 시나리오가 되고, 영화로 나올 정도의 현실성이 더해지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게 된다. 틱톡이나 유튜브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고도 있지만 39금 영상처럼. 39세 전까지는 주의하고 그 나이가 넘으면 사실 건강상 이유 때문이라도 중독의 한계가 온다. 마약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건강이 바쳐주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도그마에 갇혀 버리기도 한다. 정치판이 그와 비슷하다.


정치와 사회, 법과 질서는 추상적 개념 투성이지만 그 개념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감옥, 경찰, 소방관, 물대포 등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번 계엄 사태도 눈앞에 사람이 죽어 나갔으면 추상적 개념을 넘어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추상적 개념은 생각에 머물고, 생각과 행동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언젠가 회사 생활할 때 상사가 너무 혹독하게 해서 정신과 상담 및 심리 상담을 오래도록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죽이고 싶다고 했을 때. 정신과 의사가 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내 말이 다 맞다면 그건 정상이라고 했었다. 다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문제가 된다는 확실한 처방을 해 주었다. 심리상담사의 경우에는 내가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아가는 수많은 질문과 테스트를 했다. 그렇게 의사와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몇 년 받고, 혼자의 삶에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되다 보니 그동안 생각했었던 고민 자체를 왜 했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나에게 막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이 흘러 지금의 내 시점에서 글을 쓴다.


4 전환 딥하게,

좀 더 딥하게 들어가 본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늘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인생임은 마찬가지고 주변 문제들이 다 해결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더 많아지기도 했다. 젊은 친구들이 자살하는 수많은 뉴스를 접하면서 사실 상당히 공감되는 지난날의 나와. 조금 더 살아보면 다를 텐데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가 공존한다. 문제는 그때 내가 알던, 자살이라는 추상적이지 않은 현실적 개념과. 지금의 자살은 똑같은 것이다. 목숨을 끊는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단어다. 그렇게 이르게 된 경위를 보았을 때, 머릿속에 떠도는 수많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바뀌었다. 관념이 바뀐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의 행동을 본다. 내가 만약 직장 상사나 돈 때문에 강자와 나를 죽이려 하는 추악함에 믿었던 배신감을 느끼고 자살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의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 그걸 믿었기 때문에 10억이라는 돈도 잃었고, 건강과 가족도 잃어봐서 그렇다. 척박한 땅에서 함께 협업하면 어떻게라도 잘 살겠지 하고 수많은 만류를 뿌리치고 한 사람을 믿었는데, 세상은 등가교환이라고 내 미래의 수익을 본인의 현재 수익으로 현재화하고 나의 수많은 노력과 도전을 0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아이는 시력이 -가 되어 버렸고, 와이프는 고생스럽게 일을 하게 해야 했으며, 갚아야 할 빚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갚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래저래 강자들과 여론을 자기 유리한대로 해서 나를 욕하게 하고 내 평판을 깎았다. 나를 비참하고 비굴하게 했으며, 그렇게 나를 만들고 본인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나는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인생을 모두 버려서라도 그와 나를 욕한 인간들을 다 죽일 수 있다고 악마가 속삭인다고 하면 단 1초의 망설임 없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돈으로 보상받는다고 하고 나보다 좋지 않은 집에는 살기 싫어 한 사람의 인생을 죽여버리고 또 그것이 걱정된다고 하던 비루한 인생이 어딘가에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하지 말고 또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매우 무겁게 전하며 가벼운 인생의 논리를 말하고자 함이다.


5 딥한 이야기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내가 낸 개발자들의 비화라는 책(http://archive.today/U6 oPX) 중에 내가 하는 말도 믿지 말라는 문구가 있다. 그 정도로 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주변에 사람도 많고, https://www.instagram.com/ha_jun_ho 주변 사람 따라가 보면 오히려 잘 사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마음의 상처 역시 관념이며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고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도 않는 것.


며칠 전부터, 보겸 TV를 자주 보는데 상생펀드 1조를 운영해 본 나의 경험과 추상적 관념 속에서는 연말 다 되어 세금 때문에 기부하는 것 같고, 구독자에 비해 영상 조회수가 다들 너무 낮아서 트래픽을 산 것 같다는 의혹이 있지만 그가 만난 친구들에 대한 기부는 확실하고 그가 보여주는 통장 잔고나 매우 빠듯한 상태로 계속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은 확실한 팩트다. 아무런 정치적 성향도 없고, 선/악의 구분도 없이 사는 변호사나 어린 친구가 죽었는데 지각하는 변호사보다는 보겸의 인생이 훨씬 나아 보인다. 변호사를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식이 변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인데, 굳이 일반화를 하고 싶지는 않고 내 입장에서는 사회가 만든 규범이나 법, 그리고 판례를 공부하며 인생을 좀 더 슬기롭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과 내 등을 쳤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거지 같은 인생들과는 아예 교집합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 이야기의 마무리

서론이 너무 길었다. 좀 더 길게 하고 싶은데 본론 없이 결말로 가니 미리 꼭 알아야 할 것은 실패 계획은 현실적 계획이 아니다. 추상적 계획이어야 한다. 내가 세운 계획은 사실 모든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사람은 얻어 가자는 것이었는데, 돈 때문에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사실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어도 외면했다는 것이 맞다. 그렇게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사업 잘될 때 싸웠고, 수많은 재산이 쌓였을 때 외삼촌들이 싸웠기에 나는... 그걸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고 교훈으로 삼았어야 하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믿다가 수많은 피해를 봤다. 그러나 내가 실패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면,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실패 계획은 이랬어야 했다. 사람도 있고, 돈도 잃고 다 잃을 수 있지만 내가 못했던 경험을 꼭 하고 싶었다라면 그것은 미리 계획된 것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를 진정으로 알고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잘 풀렸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내 지난날의 모습을 보면, 뭔가 마음의 깊은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내 말이 맞으니 제발 덜 고생하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 서울대 가더라도 서울대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아득한 위치에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나온 느낌일 것이다. 세속적 관념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 사실 끝도 없는 실패 느낄 수 있다. 1조를 모아도 일론 머스크의 1/600이니... 600만 원 월급 타는 사람에 비해 1만 원 버는 느낌의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현실적 실패 계획이 아닌 추상적 실패 계획이어야 한다.


7 정신승리의 재정의

매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며, 삶의 순간을 잘 나누어 그 조각조각에서 행복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본인들은 가지지도 못한 다른 사람의 성공 잣대를 들이밀며, 추상적 실패 계획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는 단어가 있다. 

정신승리

사실, 정신 승리가 아니었으면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현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싸웠으면 그나마 피는 안 흘려도 되었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왜 전쟁을 할까? 그리고 지금 푸틴의 예상대로 짧은 기간에 패전했을까? 정신 승리는 사실 매우 좋은 단어인데 이미지는 왜 이렇게 형성되어 버린 것일까?

육체적으로 승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육체적으로 승리하지 못했으면 정신적으로라도 승리하는 것이 좋다. 실례로, 실패 계획은 내가 비록 얻는 것이 없어도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은 추억이 남는 것이다. 그 추억의 주인공이 막상 집에 같이 살고 있으면 수많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누어진 많은 시간에서 작은 실패 계획들이 존재할 때 비로소 실패 계획은 상황이 안 풀리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개념이 된다.

- 오늘 누구를 만난다. 20년 동안 만났는데 예전 같지 않고,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사진이나 하나 남겨둘까?

- 내가 쓴 이 이력서는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 같아. 늙어서 실패구나. 그런데 오랜만에 글을 쓰니 글 쓰기 실력 향상이나 해 보자. 

- 담배를 끊는 게 목표였지. 어차피 실패할게 뻔하지만. 적어도 내 사람들 앞에서는 안 피고 절대 들키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

- 15분 집중해서 공부했네. 16분으로 늘여보자. 실패하면, 데이터를 모아서 나를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 지도상의 저 위치까지 거어 보자. 우리 동네인데 안 가본 곳이네? 좋은 가게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 체력 향상이 되겠지.

- 브런치에 글을 써보자.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낮은 조회수에 일기장에 쓰라고 욕하더라도 내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사실, 이건 실패 계획이 아니다. 실패 계획인데 어린아이에게 적용하면 아이가 다른 사람과 만나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아이가 글을 쓰고 나쁜 것을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것. 원하는 곳으로 스스로 갈 수 있고 스스로 SNS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이며, 그 관점을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욕심"이다.

내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은 평생 마음속에 담아둔 사람이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서 배우 듯. 


8

깊은 실패의 대명사는 자살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해하고 나와 우리 사회가 낼 세금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길 바란다. "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회이고 또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어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처럼 회사도 책임지고 가정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복잡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그것을 처음처럼 단순하게 할 수 있다는 하는 바람으로 글을 남긴다. 지금도 늘 웃고 다니며 둥글둥글하게 산다는 말을 듣는 지금, 내 웃음의 원천은 수많은 실패 계획이 습관화되어. 어차피 오래 사는 사람이 외계인 침공과 같은 새로운 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개념이다.


삶은 사실 단순하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본능에 따르고 돈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만 다를 뿐이지 그 위치에 가면 똑같이 할 사람이 내 주변에도 많다. 김정은, 히틀러, 푸틴,... 권력을 잃으면 죽임을 당할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해야 하기에 예측 쉽다. 국가도 생명만 카운트했을 때, 이름 없는 영웅들이 지켰다고 할 수 있듯이. 그런 뻔한 삶보다는 알려지지 않더라도 정말 괜찮은 선택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크리스마스다. 내가 쓰는 글은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관점이 독창적이라고 한다면 누군가의 생각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켜 다채로운 사색이 되었으면 한다.


내용은 다 무시하고 제목처럼 자신의 기준에서 "실패 계획"이라고 부를 만한 생각의 시작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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