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목격 일지

by 키오스크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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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년의 고도, 경주 - 경주의 자부심을 느끼다


취재하러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마주했다. 제법 귀찮을 만한 질문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경주에 대해 하나의 빠트림도 없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는 천년의 고도 경주 아입니까". 이 한마디에서 경주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경주를 자랑스러워하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무수히 만났던 택시 기사님들 중 한 분과 아라키 카레우동의 주인이자 경주 문화해설가 아라키 준은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와야 해요. 그냥 놀러 오는 게 아니고, 경주에 살러 와야 해요. 와서 경주를 겪어보고 살아봐야 해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아야 경주가 다음 단계로 발전할 겁니다."



2. 경주의 택시 기사


경주에는 첨성대콜, 신라콜 등 콜택시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가보았던 그 어떤 도시보다도 택시 배차 앱이 가장 잘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앱의 호출 버튼을 누르면 3초가 채 되지 않아 택시가 배차된다. 경주에 택시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의 답은 취재 3일 차가 되었을 때 깨닫게 되었다. 경주에는 5-60대 중장년층의 인구 비율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이 부분은 경주에서 일주일만 지내보아도 체감으로도 느낄 수 있는데, 황리단길이나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가게 아니고서는 모두 나이 드신 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교적 한가한 중장년 남성들이 택시 운전을 많이 해 택시 사업이 발달되어 있는듯했다. 5일 동안 경주 취재를 다니며 택시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기사님을 만났다. 서울에서는 대화는커녕 오히려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기사가 많은 데 반해 이곳의 택시 기사들은 하염없이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천년의 고도 경주의 자발적 홍보대사들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가 아닌 경주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경주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그들에게서 들었다. 그러한 정보들은 취재 방향을 바뀌게 하기도 했으며, 취재의 정보력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심지어는 문화해설가를 하시다가 택시 운전을 하신다는 기사님은 우리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경주의 식문화와 관련된 책을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경주의 택시 기사님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경주에서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경주가 천년의 고도인 만큼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도시 개발에 많은 제한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3층 이상의 건물을 올릴 수도 없고, 공장을 세울 수도 없어서 경주의 도시 경제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사업을 하기에 매우 억압받는 도시이기에 젊은이들은 경주를 떠나려고 한다.)



3. 경주빵? 황남빵?


많은 사람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경주빵과 황남빵의 차이를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주빵'의 원조는 황남빵이다. 황남빵은 고인 최영화가 1939년에 만든 빵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주빵'의 시초다. 사실 취재를 하러 가기 전까지는 단순히 황남빵이 원조라는 것만 알고서 내려갔는데, 택시 기사님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고인 최영화가 장남에게 황남빵 사업을 물려주었으나 장남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장남의 아내이자 최영화의 며느리가 황남빵을 도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런데 최영화의 차남인 최상은이 형수님에게 내 아버지의 황남빵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며(?) 밀어내고 황남빵의 경영권을 손에 쥐게 된다. 최영화의 큰 며느리는 줄곧 하던 일을 잃게 되자 시아버지의 레시피를 가지고 독립해 최영화 빵을 만들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택시 기사님들이 공통으로 해주신 이야기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는지 궁금해 혹시 황남빵 지인은 아니시냐 물었는데 알고 보니 이 스토리는 모두 인터넷에 기사로 여러 차례 알려진 이야기였다. 이것 또한 경주에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알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기사님들 왈, 황남빵이 원조이긴 하지만 경주빵이 조금 더 달달해서 경주 사람들은 경주빵을 더 많이 사 먹는다는다고 한다. 그리고 황남빵의 개당 가격이 경주빵보다 100원 더 비싸다는 것. 황남빵 이후로 경주빵이라는 이름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개인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경주빵, 찰보리빵 가게가 많이 보인다. 덧붙여, 찰보리빵의 원조는 단석가 찰보리빵이다. (또 찰보리빵의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찰보리빵의 시초는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일본에서 찰보리빵 제조법을 익혀 온 사람이 경주에서 단석가 찰보리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찰보리빵의 자세한 이야기는 사실관계에 대한 서치가 더 필요하다.)



4. 경주의 젊은이들.


앞서 말했듯 경주는 젊은이들이 귀한 도시다. 그래서 더더욱 경주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중에서도 현재 경주에서 일명 핫플레이스나 젊은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경주의 젊은 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사람 중 90%가 타지에서 경주로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본래 살던 도시는 서울, 부산, 대구 등이었다. 이들에게 왜 경주로 내려왔는지 물었을 때 이들의 대답은 모두 비슷했다. "본래 살던 곳에서의 정신없는 삶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했다. 일상과 가까이 있는 자연이 좋았고, 고개를 돌리면 시내에서도 산이 보이고, 낮은 층고 덕에 갑갑하지 않다." "경주에 내려왔다고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가게를 마치고 집에 가면 그냥 한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여유로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들을 인터뷰하고 다음 섭외 장소로 이동하는 택시에서 생각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들은 용기를 내지 못해 주저했던 나보다는 많이 앞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용기'라는 것의 한 끗 차이일 것이라고. 결국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현재 경주의 젊은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용기를 한 번씩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5. 경주에서 처음 알게 된 것들


경주 남산이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 경주 남산 아래에 집을 짓거나 식당을 할 경우 기와집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 경주만의 식자재가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 않다는 것. 경주 사람들은 붙임성이 좋다는 것. 경주의 한우가 유명하다는 것. 경주의 일부 지역이 고도 제한으로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는 것. 이렇듯 건물의 층을 높일 수 없는 것이 지역 사람들의 경제 활동을 억제한다는 것. 경주에는 공장이 없다는 것. 경주에는 가지 반찬이 자주 올라온다는 것. 경주에도 바다를 접하고 있는 감포항이 있다는 것. 경주에는 택시 할증이 붙는 일정 구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 예를 들면 신경주역에서 보문호수까지 가게 되면 할증이 두 번 붙는다. 할증 구간에 대한 정보는 미리 검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