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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un 19. 2020

홍대 운동장

홍익대학교 정문 다음 첫 번째 건물로 접어들다가 객석을 따라 한 칸씩 떨어지면서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무슨 말이냐면 검투사가 되겠단 자신감 정도가 아니면 운동장에서의 농구 연습은 미뤄두잔 소리다. 수업 시간이 좀 남는 학생이거나, 수업을 마치고 터덜터덜 내려오는 학생이면, 다 한 번씩 운동장을 내려다보게 되니. 


그래서 경기가 없는 날이 더 많은 운동장에, 시월 며칠 밤부턴지 농구코트 조명마저 안 켜준다. 오늘 밤엔 무조건 농구 경기가 없다. 근데 운동장의 어두운 기색과 상관없이 객석들이 하나 둘씩 차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홍대 주위의 고요함은 말이 안 되니까 밤공기들의 승패 없는 싸움이라도 보려고 왔나. 객석에는 남녀, 남녀,… 둘 둘씩 띄엄띄엄. 


운동장은 보러 와준 게 마냥 기쁘다. 빨리 밤공기들로 보여주기 식 싸움을 시키고, 객석 뒤편에 즐비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에겐 승패도 없는 싸움을 응원하게끔 한다. 나무 사이사이 섞여 흐릿한 캠퍼스 전등만이 그 모습을 비웃는다. 보러 와주긴, 둘 둘씩 앉은 자리에서 서로 얼굴만 뚫어지게 보다가 다정해져서 일어날 텐데. 전등이 어느 둘을 지목하는데, 그냥 모른 척 싸워 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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