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Jun 12. 2020

공사장 펜스

세수도 안 한 내 체면에서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운 대학생이 보여야 한다. 한 번 뒤집어쓴 후드를 고쳐 썼다. 이 문을 통과하면 명지대학교. 뚫어 놓은 이유야 따로 있겠지만, 이 조그마한 문 덕분에 나는 집에서 명지대 정문 맥도날드까지 한 번 만에 간다. 자, 그럼 명지대 학생으로 분한다.


문을 통과하고도 별 긴장감이 없는 건 오른쪽으로 길쭉이 늘어선 공사장 펜스들. 이것들을 모조리 지나야만 비로소 대학생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도심 속 지분이 적은 캠퍼스 내에 또 건물을 얼마나 올리려고 펜스의 높이란 높다랗다. 


정말 제대로 후드를 고쳐 써야겠다할 때쯤, 저기 맞은편으로부터 유치원생 무리가 걸어온다. 캠퍼스로 견학이라도 온 모양새다. 무엇보다 대학생들 지나치는 게 숙제인 나는 참새 같은 유치원생쯤이야 가볍게 지나칠 수 있다. 


종알종알 참새들은 그런데 계속 신이 나 있다. 무엇 때문일까 하고 눈동자들을 따라가 봤더니, 다름 아닌 공사장 펜스. 그 중에서도 높다란 높이를 가르며 벽지 마냥 발려 있는 초록색 나뭇잎 사진들이었다. 종알종알. 나는 대학생들을 만난 것도 아닌데 머쓱해졌다. 맥도날드로 가기 위해 몇 차례나 이 옆을 지나다녔을까. 그럼에도 회색을 가로지르는 초록색 나뭇잎들은 나는 오늘에서야 발견한 것이다. 공사장 펜스이니까 회색 병풍이겠지 내가 그랬다면, 서울의 유치원생들은 회색 병풍에도 얼마든지 초록색 자연을 그려놓을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