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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un 10. 2020

커피

커피





 허약한 위장을 타고난 나머지 커피를 끊고 산다. 너무 마시고 싶으면 나는 진저에일을 시켜놓고 친한 앞사람의 것을 한두 모금 훔쳐 마신다. 그럼에도 평가는 꼭 내린다. “이 집 깔끔하게 잘하네.” 촌에 살면서 커피 값이 비싸다고 툴툴대던 내가 언제부터 커피 맛을 알았다고.



 “학준이도 와서 마셔봐.”


 막내 홀 담당인 나는, 길게는 5년씩 일해 온 누나, 형들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왜 주문도 안 들어온 아메리카노를 다섯 잔씩이나 뽑아 놓고 곁에는 사장님이 서 계셨다. 나는 이유를 물을까 하다가 미뤘다. 아직 홀 맡는 것도 버거워 주방 안의 일은 파악조차 못 하는 중인데, 이유를 물으면 내가 괜히 더 뜨내기일 것만 같았다. 최대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한 모금 마신 뒤 내려놓기는 소심하게 내려놓았다.


 “뭐해? 다 마셔봐야지.”


 “예에?”


 “다섯 잔 다 한 모금씩 마셔보고 뭐가 괜찮나 얘기해봐.”


 사장님의 표정이 언젠가 내가 홀에서 실수한 날과 비슷해 뒤로 놀랄 뻔했다. 벌써 잘 말할 자신이 없었다. 물어볼 누나, 형들은 당연히 내가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듯 한 발씩 더 멀어졌다. 그래. 일단 이 다섯 잔은 사장님이 다 다른 방식으로 뽑아 놓은 거다. 그러나 이미 당황한 나머지 내가 어떤 속도로 마시고 있나 계산도 없이 한 모금씩을 다 마셔버렸다. 질문이 바로 날라 온다.


 “어때? 말해봐.”


 다 똑같은 쓴맛밖에 안 났지만


 “세 번째 깨 젤 나은데요? 이 건 신맛이 센 것 같아요. 이건 좀 텁텁해요.”


 사장님 반응을 은근슬쩍 살피는데


 “그래?”


 놀랍게도 진지하게 되새기고 계셨다. 내 말마따나 세 번째 깨 젤 나은지 본인이 한번 마셔보았고, 스스로의 느낌과 비교하는 것 같았다. 죄송스러운 혀를 감싸며 다행히 주방을 잘 빠져나왔다.



 후로도 아메리카노 다섯 잔을 뽑아 놓고 나를 부르셨다. 나는 쓴맛과 경쟁할 만한 단어들을 외면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에도 진실로 들어주시니까, 내 단어들이 한 잔 안에 과연 들어있긴 한가, 궁금해서 또 한 모금 마셨다. 사장님과의 그걸 계속하다가 보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이 생겨났다. 손님들한테는 어떤 커피를 드려야하는지도 배웠다. 지금이야 진저에일을 시켜놓고 앞사람의 커피를 훔쳐 평가하고나 있지만,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는 쭉 아는 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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