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걷은 커튼을 손가락 두개가 쉽사리 내려놓지 못한다. 쏘는 햇볕을 가리고는 싶은데 버스 창문 밖으로 하나, 둘 기와집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번 올 때와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인 게 또 고마워서, 고향 친구 얼굴을 뜯어보듯 꼼꼼히 그것들을 눈에 담는다. 한 겹, 한 겹 쌓인 기와는 농부의 힘줄로 만든 밭고랑을 닮았고, 처마 끝의 휘어짐은 학의 날갯짓처럼 서두름이 없다. 버스의 속도와 맞붙어도 결코 지지 않는 곡선에 나는 커튼을 활짝 젖히고야 만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제법 톡 쏘는 유월의 햇살이다. 버스에서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을 뿐인데 창문 밖 하늘은 도시의 것과 분명 차이가 났다. 또 한 시간 전의 부산과 비교하면, 빌딩의 자태 또한 많이 달라져 있다. 낮은 기와집들 사이로 가끔 솟은 빌딩들은 아무리 사방을 살펴도 제 눈높이의 짝이 없어 남사스러움에 몸을 떨었다.
고향 집에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일러두었으니 느긋하게 움직여도 된다. 따라서 버스가 멈춘 뒤 빠져나가는 뒷모습들을 나는 마지막까지 챙겨본다. 이제 일어설 채비를 하려는데, 가방 속 자취방에서 모아 온 반찬통들이 빈 소리를 냈다.
“달그락! 달그락!”
고향에 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집까지 보통 택시를 타곤 했지만, 가방이 가벼움을 확인한 김에 이번엔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걸으면서 나는, 경주의 기와집들이 이토록 키가 작은 이유를 알게 된다. 산 때문이다. 산을 위하는 까닭에, 더 높아지고 싶은 욕심을 기와의 무게로 누르는 것이었다. 나는 빌딩과 빌딩 사이로 약간씩 보이는 도시의 산에 대해, 아무렇게나 잘려진 깍두기 모양 같다며 슬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경주의 산은 그 어떤 문턱에도 걸리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로 도착해 주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시인들이 많다. 문득 바람이 불어와 산과 나를 한꺼번에 문지르고 가면, 그럴 때 잠깐 동안 나도 시인이 된 기분에 빠져든다. 산은 박목월을, 김동리를, 또 누군가를 기억해 뒀다가 오늘 내 시선에 그들을 입히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취한 듯 시인이 되어서 경주를 걷는 것이 좋다. 시인이라는 단어는 추억이 많은 어른 같아서 좋다. <가정>에서 박목월 시인이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을 신고 현관에 도착하듯, 나도 벌써 고향 집 근처에 다다랐다. 가방 속에 빈 반찬통들은 여전히 달그락거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가볍고 요란한 소리가 무엇인가로 채워진 듯, 내 마음이 묵직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