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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05. 2015

은사(恩師)





 바람은 별 뜻도 없이 부는데 강은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려 물결을 낸다. 연약하면 수고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세상 이치 같아서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물결은 차례도 없이 생겨나기만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문득, 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내게 되려, 네 속은 왜 그리 굳은살이 앉았냐고 강은 물어왔다.




 중학교 때 나는 소심한 남학생이었다. 발표 같은 것은 곧잘 했지만, 감추는 것이 있어서 소심해질 때가 많았다. 새 학년이 되면서 하는 담임선생님과의 일대일 면담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때였다.

 2학년이 되고 얼마 정도 흐른 날이었다. 선생님은 미리 거둔 ‘가족소개서’를 겹쳐 들고 서서 1번부터 한 명 씩 복도로 부를 거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1번이 밖을 나가자, 교실 안은 철새 떼가 날아들어 온 듯 한꺼번에 시끄러워졌다. 나도 무리와 함께 별 걱정 없이 이동하는 철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번호에 가까워 올수록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복도로 나오자, 선생님은 따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내가 써 낸 가족소개서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 체육선생님 특유의 헤매는 곳 없는 말투가 나를 자리에 앉혔다. 아직 한참은 큰 교복이 오늘따라 더 무겁고, 그 속의 나는 참 작게 느껴졌다. 그날도 선생님 근처엔 담배 냄새가 났다. 첫 마디로, 매번 백일장에서 상을 타는 내가 신기하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음이 솔직하게 묻어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알게 된다. 그러다가 선생님 눈이 가족소개서의 아버지 직업란을 읽었고, 그 얼굴에 어떤 마음이 묻어날지 대충 가늠이 되었다. 종이 위 빈 칸에 적힌 ‘상업’은 누가 봐도 내 손 글씨였다.

  

 “아버지 장사하시나 보네. 무슨 장사 하시노?”

  

 “……방앗간 하시는 데요.”


 복도에 아무도 없었지만, 누구도 못 듣게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의 선생님들은 비슷비슷한 반응이었다. 내 부끄러움을 이해하겠다는 듯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는 것이었고, 그 몇 초는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야, 니는 떡은 실컷 먹겠네. 그럼 집에서는 니 글 잘 쓰는 거 아시나?”


 “네에………아니요?”


 면담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면서 나는, 지금이 봄이 풀리는 새 학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엔 누구라도 감추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유독 그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흔들 거렸다. 그래서 일부러 교복 바지 단을 줄여서 다녔고, 머리엔 염색물을 들였다가 뺏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고 육지처럼 무뚝뚝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내가 육지의 적막을 샘 할 때마다 계속 노를 내리셨다. 당신의 뱃머리가 향하는 곳 없더라도 노를 내려 물결 띄우는 탓에, 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대로 지금 아버지는 방앗간을 그만두셨고, 저 강이 알려오듯 내 속에는 굳은살이 앉았다. 나는 자연스레 뱃사공 소식이 궁금해져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도 많이 변했겠지 속으로 생각하는데, 선생님 폐암으로 돌아가신 걸 여태 몰랐냐며 나를 혼내는 동창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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