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첫 정보, 그리고 나다움에 대하여
사진출처 : 알라딘
*보고 듣고 읽어 기록하기 23번 째.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1. 들어가며
며칠 마감을 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생각이 많다.(깊은 게 아니다!) 생각한 것들은 참 잡다하다.
대선에 대하여, 삼 년 전 그 날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본 중간고사에 대하여. 벌써 푸른 잎이 돋은 벚꽃에 대하여. 싹둑 잘려 그루터기만 남은 대학로의 어느 가로수에 대하여. 마감에 대하여. 반응에 대하여. 곧 있을 공모전에 대하여. 흥국생명의 준우승에 대하여. 팟캐스트에 대하여. 취직에 대하여. 보기위해 받아놓은 또 오해영에 대하여. 하이큐!!에 대하여. 미래에 대하여. 맨유의 2대영 승리에 대하여. 그리고 삼각김밥을 무엇을 먹을 지에 대하여.
쓸 데 없지만 꼭 쓸 데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그런 생각들이 범람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그 많은 생각 중에 '나'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고. 아니 아예 없었다고.
2. 나다운 게 뭔데!
하나씩 따져보니 나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들 이었다.
동네친구 A와 종종 하는 만담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
너... 변했어.
사람은 원래 변해.(싸늘)
왜 그래! 이건 너답지 않아.
하... 나답다고? 나다운 게 뭔데. 그 빌어먹을 나다운 게 뭔데!(버럭)
됐어. 우리 그만하자.
뭘.
헤어져.
잠깐... 잠깐만!
(대개는 이 베이스에 나다운게 뭔데! 에서 wwe 헤비웨잇 챔피온 좌아아아안 씨이 나! 후루루루루! 한반도! 로 변용한다.)
사실 별 내용도 의미도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만담?을 가져온 이유는 '나다움'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나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부터 죽을때까지 이어지는 고민일지어다. 나는 또 생각했다. 그렇지만 답이 될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나다운 건 도대체 뭘까.
3.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알고보면 우린 자기소개에 익숙한 존재들이다. 두 명 이상 사람이 모이는 자리면, 그것도 처음보는 사람과 함께 그 공간이 있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사는 곳이 어디고, 몇 살이며,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한다. 서로간에 정보가 없기는 마찬가지기에 조금씩 흘리는 단서들을 모으다가 한 개, 두 개씩 접점을 찾아가며 관계는 형성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기소개가 두려워졌다. 무의식적인 방어인지 나는 습관적으로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반갑습니다. 저는 학곰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넘기는 정보는 단 두 가지다. 당신이 반갑고, 난 학곰이다.
글을 쓰면서 새삼 느끼는 건 내가 타인에게 참 불친절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반가운 것도 내 이름이 학곰이라는 것도 아니라 당신과 맞닿을 첫 정보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면에서 배달의 민족은 '첫 정보'를 잘 제공했다. 저자의 단어 선택을 빌려오면 배민은 '키치함'과 'B급 정서'를 갖고 있다는데, 물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카피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말을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거야! 내 취향은 이런 거란다. 너는 어때? 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브랜딩 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기에 내가 이해한대로 써보자면, 배민은 자신들의 '색'을 잘 만들 줄 알았다. 단발적으로 반응에 따라 그때그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 세태의 흐름과 트렌드를 잘 읽되 자신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인 게다.
키치나 B급 정서라는 말은 그들이 만든 말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배민은 회사의 이미지를 취향의 영역으로 전환시킨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런 걸 좋아해.' 라는 식으로 그들은 위의 키워드를 선택하고 활용했다.
그리고나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너는 어때?'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를 하듯이 자신의 정보를 넌지시 던지고, 사용자들의 취향을 역으로 묻는 이 과정은 회사와 고객이 가치를 공유하는 경험을 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일류, 세계화 같은 '비전'은 사용자들이 직접 공감하기 어렵다. 덩치가 큰 회사에서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사원을 성장시키기는 좋겠지만.
사용자와 함께 공감하며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 함께 회사가 내건 '재미'라는 코드를 경험하게 하면서 사용자들은 충성도가 생긴다. 남 얘기(그건 회사의 얘기고... 하는 분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그렇다.
이러한 과정에는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회사가 내건 코드가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00답다. 라는 말을 듣기까지는 그 사람이 보여준 일련의 퍼포먼스들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고착화된다. 한 번 굳은 이미지는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그 기준으로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신뢰가 생길 것이고, 못 미치거나 과한 모습을 보인다면 '변했다.'거나 '초심을 잃다.'는 워딩이 따라 붙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배민은 배민다운 길을 걸어왔다. 그들이 만드는 일관적인, 그러나 사회의 흐름을 읽고 시기적절하게 변용하며 성장하는 '이미지'가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4. 나다움
나다운 것은 뭘까. 나에겐 일관적으로 지켜온 가치가 있을까. 그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또 생각에 빠진다.
생각들 속에서 건진 하나의 발견.
"나는 나보다 나와 관련된 것들을 생각한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나를 더 잘 알고 싶고 나를 더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다. 매일매일보고 생각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고 싶은 나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