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카페, 바닥을 보다가
어쩌면 시작은 늘 설렌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르기에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스물일곱의 나는,
문득 '시작'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불현듯이 든 생각이었다.
밤 열한 시,
나는 24시간 간판이 붙은 어느 프렌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콜드브루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탁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마땅히 시선을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연을 당했거나,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몹시 큰 좌절을 겪었다면 명분이라도 섰을텐데 애석하게도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어서,
아무 것도 없기에 나는 공허했다.
카페는 밤이 늦었는데도 복작거렸다.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이 시간까지 대화를, 작업을,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것도 없는 나는 바닥만 바라보았다.
달리 해야할 일도 없었고, 마땅히 부를 친구도, 연락할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닥을 보는 일뿐이었다.
바닥을 보는 일은 교묘하다. 시선을 온전하게 바닥에 집중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보면서도 나는 주변을 볼 수밖엔 없다. 대놓고 보지 않더라도 난 남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요즘은 어쩌면 바닥을 보듯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똘히 무언가 보는 척하지만 실은 그 사이에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나 관찰하는 그런 날들. 그럭저럭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나빠보이지도 않는 그런 삶.
바닥을 보는 일에는 내가 없었다. 나의 시야에는 내가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타인들만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엔 수많은 타인들의 이야기로 가득찼다. 부러움, 부담스러움, 부끄러움, 부족함.
늦된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고 말이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마지못해 움직인다. 적당히 남들이 하는 것을, 남들이 하는 만큼, 남들이 하는 정도 해왔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설렘은 없다. 오늘은 어제와 같이 지루하고, 아마 내일도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오늘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산다면 마흔 한 살에도 구십 칠 세에도 백 두 살에도 나는 적당히 권태로운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이었다.
그 '아무 것도 없음'이 불현듯 두려워졌다. 숨이 막히도록 무서워졌다. 나는 고개를 쳐들고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 내 얼굴이 보이도록 했다.
내가 있었다. 시작으로부터 너무도 멀어진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낯설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 그 생각이 퍽 어이없게 느껴져 피식 웃었다. 낯선 얼굴이 따라서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나는 결심을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어!
라고.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린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나는 다만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싶다.
'뭐라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부끄럽지만 나의 고백을 담아
나를 사랑해 나가는 이야기를 쓴다.
때론 우울한 날도 혼자서 실실 웃는 날도 쪽팔려서 이 글을 삭제하고 싶은 날도 있을 게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 하니,
한 번 시작해보려 한다.
정말로 오랜만에 시작이 설렌다.